◆이종구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cklee@kitech.re.kr
최근 우리 산업에서 이른바 4T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같은 주장은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환경기술(ET)·나노기술(NT)이야말로 장차 한국경제를 부양할 효자산업이라는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인종과 언어, 종교 등으로 금그어지던 국가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지구상에 남은 국경은 이제 기술경쟁력이 쌓은 경제블록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이 요령부득의 경제블록을 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역량을 4T분야로 집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4T만이 살 길이라는 맹목적 믿음 속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전통산업과의 연계 노력이 그것이다. 연계 노력은커녕 전통산업을 미운 오리새끼처럼 취급하려는 혐의마저 엿보여 염려스럽다.
전통산업과 단절된 채 따로 추진되는 4T 육성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 첨단은 기반 위에서만 구축 가능하므로 양자 모두의 균형 있는 발전, 나아가 양자의 발전적 접목을 통한 체질강화만이 우리 경제를 튼실하게 살찌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통산업의 기를 죽이는 일련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는 비단 어제 오늘 제기돼온 문제점만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관련 종사자들조차 굴뚝산업이니, 3D 분야이니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과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풍조가 더욱 큰 문제라고 본다.
3D 분야라고 하면 흔히 주물, 금형, 용접, 도금 등 우리 산업의 토대를 이루는 생산기반기술 분야를 가리킨다. 위험하고(dangerous), 더럽고(dirty), 어렵다는(difficult) 이유로 불명예스런 이름에 더해 소외와 기피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이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분야 없이는 4T기술도, 우리 경제도 그 존재기반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생산기반기술 종사자들부터 머리속에서 아예 3D라는 용어 자체를 지워 없애야 할 때다. 사기진작 차원 외에도 실제 이 분야는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웠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외피와 내면을 두루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기반기술이 지향하는 궁극점은 데인저러스(dangerous)를 오토매틱(automatic)으로, 더티(dirty)를 클린(clean)으로, 디피컬트(difficult)를 에너지 이펙티브(energy-effective)로 바꾸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한다. 3D 테크를 ACE 테크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위험한 공정을 자동화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불결한 공해물질은 청정생산 방식으로 사전예방하며 어려운 공정을 에너지 효율적인 공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ACE 테크의 핵심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여기에 공감하고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주물의 경우만 하더라도 모래에 1000도 이상의 쇳물을 부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산업재해를 비롯한 환경오염, 인력부족 현상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래 대신 새로운 청정원료로 대체하려는 다양한 모색과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연구개발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도 생산현장을 자동화·청정화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체제로 전환하는 데 적극적이다. 아직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머지 않은 장래에 생산기반기술 분야의 ACE 테크가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비록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산업계가 ACE 테크를 추구하는 생산기반기술 분야를 희망과 신뢰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이 분야가 그간 일관되게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기반이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