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청산해야 할 한건주의 풍토

◆박재성 논설위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숫자놀음이다. 정부는 인터넷 교육을 위해 ‘100만 주부 인터넷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다. 실업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벤처기업을 육성해 “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또 최근에도 정부는 ‘1만개 중소기업의 IT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왜 인터넷 교육을 받아야 할 주부가 90만명이나 110만명이 아니고 꼭 100만명이어야 할까. 100만명에게 인터넷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나 파급효과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100만명이라는 숫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야 할 터이다. 그런데도 그런 배경이나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을 일반인들은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200만개의 일자리’나 ‘1만개 중소기업 IT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딱 떨어지는 단위의 숫자는 때로는 그것이 꼭 필요한 정확한 수치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확성이나 구체성이 결여되게 마련이다.

 정부 당국자들이 발표하는 정책에서 수치를 정확하게 계산해 산출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제목으로 해서 발표하는 짓은 삼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상징적인 목표라 하더라도 남발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딱 부러지는 숫자를 쓰는 정책입안자들이 그것을 듣는 사람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면 고마운 일이긴 하다. 기억력이 빈약한 사람들이 숫자를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책입안자들이 그것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과연 국민뿐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을 발표하는 사람들보다 상위직에 있는 사람들, 결국에는 청와대가 들어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의 속내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딱 부러지는 단위의 숫자는 ‘한건주의’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입신양명이나 최소한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실적이나 치적을 내세워야 할 때 한건주의는 종종 나타난다. 그것은 이미지가 강해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건주의는 소극적인 ‘복지부동’과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한탕주의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한건주의는 종종 마치 속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거푸집과 같아서 문제다. 실속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통해 창출하겠다는 200만개의 일자리도 결국 허구로 드러났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일자리는 그것을 시행하기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책 실패로 보기 어렵다. 정부가 애초 고민 속에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추진했더라면 적어도 200만이라는 수치가 나오지도, 또 사용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이니 하는 발표도 따지고 보면 한건주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정부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초중고교 전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해 인터넷을 연결했다”고 발표했지만 그것도 ‘모든 교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한건주의 풍토는 비단 정부뿐 아니라 기업체에도 뿌리깊이 박혀 있다. 모 증권사가 조성하기로 한 ‘100조원 펀드’도 애초 목표는 ‘10조원’이었는데 결재 과정에서 동그라미를 하나 더 치라고 해서 세워진 터무니없는 목표였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결국 그 회사는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했거니와 외국에 매각될 운명에 처하게 됐고 임직원도 20∼30% 감원될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대박이라는 한건주의에 사로잡힌 벤처기업들은 이제 그 꿈이 날아가고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쯤 되면 한건주의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한건주의에 춤추는 인간 군상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와 달리 선진국이나 선진기업에서는 한건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불안하면 한건주의는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목표를 드러내서 선전하고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는 한건주의는 이젠 우리 사회에서 분명 청산돼야 할 풍토다.

  j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