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성득 한국 전산원장

우리나라 정보통신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등소평과 비유됐던 작은 거인 박성득 한국전산원장. 58년 체신고 졸업과 함께 중앙전화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던 박성득 원장이 오는 25일 한국전산원장 자리를 후배인 서삼영씨에 물려주고 43년 2개월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

 박 원장은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로 이어지는 공직생활 중 차관을 지냈고 지난 3년 2개월동안 한국전산원을 책임졌던 우리나라 정보통신계의 산 증인이다. 퇴임을 앞둔 박 원장을 만나 보았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는.

 ▲참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70년 저를 포함한 체신고 출신 5명이 기술고시에 합격했는데 당시 전부 타 부처 배속을 희망, 당시 체신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체신부에 눌러 앉았는데 그게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불모지였던 한국의 통신을 정보화대국, IT산업강국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보탰다는 데 만족합니다.

 ―통신후진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통신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을텐데. 

 ▲사실 대통령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고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은 76년 “우리 것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오늘날 디지털기술의 원천이 된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정보화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최근의 벤처육성, 지식정보강국 건설, IT산업 세계화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비전과 함께 3년 만에 이뤄진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안을 꼽는다면.

 ▲정보화대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 분기점은 89년 시작된 한-미 통신회담이었습니다. 86년 10년을 공들였던 국산 TDX 개발이 완료되자 당시까지만해도 스웨덴과 함께 국내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은 이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요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우리의 수출 주도산업이었던 반도체, 자동차 등을 볼모로 잡고 국제전화, 시회전화 등 통신서비스 전 분야를 개방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정책국장으로 재직했는데 협상을 통해 결국 한-미 통신협상을 결렬시켜버렸습니다. 결국 우리 기술을 바탕으로 무선호출, 이동전화를 시작하게 됐고 이는 우리 통신산업 발전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결국 정보통신정책의 최종 목표는 산업이었는데 산업과 통신정책의 상관관계는.

 ▲최근 일부 통신사업자들이 성능과 가격을 이유로 외산장비를 써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통신산업을 일으킨 과정을 아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동통신과 무선호출을 함으로써 우리는 루슨트나 에릭슨과 견줄 수 있는 통신장비업체를 키웠고 오늘날 신흥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팬택, 텔슨전자, 세원텔레콤은 그 결과물입니다. 정부당국이나 통신사업자들은 산업을 일으킨다는 사고를 최우선에 둬야 합니다.

 ―우리의 IT산업 위상을 평가한다면.

 ▲전화나 초고속인터넷 등 통신서비스 부문은 분명 세계 1위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IT산업은 아직 유럽이나 미국보다 뒤처져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이에 있습니다. 이용자-통신서비스-산업 등 3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 과정에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 마련이 계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기업들이 규제 해소를 이야기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가경제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없습니다. 산업을 일으키는 차원이 아닌 외국기술을 들여와 장사를 해야 하는데 정부 규제가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보통신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마련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우리의 정보통신은 절반의 성공 단계입니다. 이제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보화를 통해 조직 내부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합니다. 특히 전자정부는 시급히, 그리고 완벽하게 완료돼야 할 현안입니다. 전자정부 구현이 무난하게 처리된다면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선진국 이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향후 계획은.

 ▲현재 기업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을 갖고 싶습니다. 새벽에 귀가해 새벽에 나가다보니 간첩으로 신고된 적도 있습니다. 솔직히 당분간 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보통신에 몸담았던 43년 2개월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분명 행운아였고 보람 있는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