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번호표시(콜러ID)산업 활성화를 위해 단말기 생산업체와 통신사업자들이 국회에서 만나 논의를 벌였지만 원론적 입장의 공감대만 만들었을 뿐 세부대책 등 각론에선 현저한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이상희 위원장의 주선으로 3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콜러ID산업 활성화 정책간담회’에서 단말기 생산업체측은 ‘서비스 여건조성 미흡의 책임에 따라 통신사업자들이 단말기 재고물량 소진에 함께 힘쓸 것’을 주장한 반면, 사업자측은 ‘서비스만 전담할 일이지 재고단말기 판로까지 만들어야 할 책임은 없다’며 맞섰다.
이에 따라 4월 시범서비스 이후 정보통신업계 최대난제로 부상한 콜러ID사태는 단말기생산업체 대 한국통신 간 대립구도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병철 발신자정보표시산업협회 회장은 “9개 회원사를 조사한 결과, 완제품 재고량이 37만7300여대에 이르고 거의 제품화단계에 있는 확보물품도 43만3000여대분에 달해 금액으로 따지면 200억원대 악성부채를 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현황을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업체가 중소규모이다보니 이대로 가다간 6월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질 업체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상황근거를 바탕으로 이 회장은 한국통신측에 “앞으로 콜러ID서비스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단말기를 제공하되 해당 단말기는 생산업체가 사업자들에게 원가 수준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 박래안 통화사업팀장은 “재고물량을 떠안는 것은 네트워크 개선 투자비에 추가적으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이 사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소지가 크기 때문에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 팀장은 “연내에 1600만회선에 대한 서비스제공 목표에는 변함이 없으며 당장 6월부터는 전화가입자가 서비스신청을 해오면 늦어도 48시간 안에는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통부도 일본 NTT의 엘모드처럼 콜러ID서비스를 발신자번호표시서비스로 명제화하지 말고 사업자들이 그들의 특성에 맞게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단말기업체와 통신사업자는 콜러ID시장을 보는 시각과 현안과제를 완전히 다르게 잡고 있는데서 이견형성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통신사업자는 당초 60% 이상의 전화가입자를 대상으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해놓고 현실적으론 전체의 10% 내외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을 만든 데 있어 근원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 단말기 생산업체들도 정확한 시장예측에 따르지 않고 과다생산을 통해 경영악화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한편 이상희 의원은 이날 6월 열리는 국회 과기정위 상임위원회에 이 안건을 정식 상정해 토론에 붙이고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과 단말기업체 대표단과의 면담 주선 의사를 표명, 콜러ID시장 난국해결의 여지는 계속해서 남겨뒀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