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상생의 협력

◆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10여 해 전의 일이다. 삼성과 지금의 LG가 특허기술공유를 선언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외국업체의 특허공세로 국내기업들이 몸살을 앓던 때였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두 기업이 자사 보유 특허기술을 무상으로 사용케 했던 것이 당시로서는 신선한 뉴스였다. “첨단기술을 놓고 서로 각을 세우며 치열하게 경쟁하던 업체가 특허기술을 공유키로 하다니….”  첨예한 경쟁관계에 있던 두 업체간 협력은 기술력 부족에 시달리던 국내업계에 새로운 모습의 기업상을 보여 주었다.

 이는 밖으로 드러난 명분 못지 않게 국내시장에서 업체간 밥그릇 싸움을 자제하고 새로운 기술추세에 협력해 공생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물론 두 업체가 그런 결과를 도출해 내기까지 나름대로 면밀한 검토와 내부 격론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두 업체의 그런 결정은 대국적이고 국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외국업체의 특허공세에 맞서는 효율적인 한 수단이었고 업체간 중복투자와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우선 첨단기술을 단일 업체가 개발하려면 엄청난 투자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설령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날로 빨라지는 기술발전추세에 제대로 부응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위험을 기술공유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전자업계에는 비슷한 유형의 국내업체간 협력사례가 뒤를 이었다. 그후 가전 3사가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 중 국내 충당이 가능한 제품을 대체키로 하고 협력업체에 대한 각종 지원을 확대키로 한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계열사 또는 협력사가 아니더라도 국산화한 부품이 있으면 상호구매키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부품산업 육성에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만든 디지털캠코더를 LG전자가 자사브랜드를 부착해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 LG전자가 생산한 가스오븐레인지와 식기세척기를 삼성전자의 브랜드를 부착해 팔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기대하기 어려운 협력이다. 이런 형태는 긍정적으로 상생의 윈윈전략의 하나다. 이번 조치는 수출부진에다 국내경기조차 호전론과 비관론이 나와 국민을 헷갈리게 만드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산업별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기관이 4200제품을 대상으로 시장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세계1위 제품인 국산품은 76개로 홍콩(206개)이나 대만(122개) 등에도 뒤처졌다고 한다. 또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선진국의 85% 수준이고 핵심부품 소재의 국산화율은 50%선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부품소재의 수입액이 지난 97년까지 10년간 1300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외국의존도는 높다. 수출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업체간 협력은 절대적이다. 이제 경쟁대상은 국내업체가 아니라 세계의 대기업들이다. 기술은 그 나라 국력의 잣대라고 한다. 이런 기술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기술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전문인력도 키워야 한다. 어렵사리 어떤 제품을 개발해도 선진국들이 가만 있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진출을 막는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업체간 도토리 키재기식의 시장경쟁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국가단위의 큰 그림 아래서 협력하면서 전략적으로 시장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기술을 공유하면서 첨단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제품판매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확실한 수단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나름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고유기술 보유 및 개혁의지가 필요하다. 이번 두 기업의 마케팅 협력은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좋은 본보기다. 다른 기업의 협력사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