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산 장비 공공기관이 외면하다니

국산 장비에 대한 푸대접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에서조차 국산장비를 외면하고 있다니 우려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국내 네트워크장비시장이 외국업체의 잔치마당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올들어 네트워크장비 입찰을 실시한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들이 외국 특정업체 제품이나 특정업체 제품만이 갖고 있는 고유기능 및 운용체계를 입찰공고에 명시함에 따라 국산 장비업체의 입찰 참여가 아예 봉쇄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대통령 비서실에서 실시한 네트워크장비 입찰공고에 외국 특정업체 제품이 명시됐으며, 한국과학기술원과 외무부는 동일 제조사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항을 입찰공고에 명시해 국내 업체의 입찰 참여가 원천 봉쇄됐다. 또 충북 농업기술원, 동대문구청, 노동부, 조달청, 광주시교육청, 남양주시청, 광주소방안전본부, 중랑구청 등 올해 네트워크장비를 구매한 곳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국내 업체의 입찰 참여를 사전봉쇄해 장비업체의 불만이 높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대다수 기관이 외산 제품과 이미 국산화한 제품의 가격 및 성능을 비교 테스트하지 않았으며 특정업체에서만 사용하는 운용SW와 프로토콜을 입찰공고에 명시하는 등 외산 장비공급 업체를 묵시적으로 지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민간기업의 외국산 제품 선호로 애써 개발한 국산 제품이 사장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은 터에 정부 및 공공기관까지 외국산 제품 도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국산장비 업체가 서야 할 곳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물론 외산을 선호하는 정부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정부기관에 설치되는 시스템이 잘못될 경우 집단민원을 초래하는 등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될 문제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국산 제품이라고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산 장비업체의 가장 큰 불만은 국산 네트워크장비가 성능 테스트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통신사업자들의 벤치마킹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할 정도로 기능이 크게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에서는 외면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국산 IT제품의 성능이 개선되고 일부 네트워크장비의 경우 가격과 성능에서 외산을 앞서는 상황이고 보면 이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산 네트워크장비를 우리 정부가 외면하는 것은 기술과 가격요소를 떠나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부가 장비 국산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국산 장비를 홀대하면 첨단 핵심기술을 보유한 모든 기업이 시장성에 회의를 느끼고 광통신, 기가비트 백본장비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로벌 마켓시대에 국수적인 민족의식에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매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새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