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입문<34>
한번은 내방객 가운데 노숙자가 찾아왔다. 비서실로 들어와서 자신은 노숙자라고 말했는데, 말쑥한 신사복을 차려입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얼굴도 그렇게 초췌하지 않고 단정했다. 아마도 목욕을 하고 머리를 손질했는지 단정했다. 그가 노숙자라고 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만나기를 원했으나 비서가 용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만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를 불러들여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노숙자에 대한 보호 입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실제 노숙자인지 확인을 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나, 노숙자 보호입법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노숙자 보호입법을 어떻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류 뭉치를 내놓았다. 그것을 펴들고 보니, 노숙자를 기숙시킬 수 있는 숙소와 최소한 연명을 할 수 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가지고 있는 기능과 특기, 자격증을 가지고 직업을 알선해 줄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직업 소개소에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 기구를 만들려면 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어느 정도 예산이 들어가는지, 그것이 가능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왜 나를 찾아왔는지 궁금했지만, 그를 보냈기 때문에 묻지 못했다.
이렇게 의원 사무실을 찾아오는 내방객은 여러 직업을 가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엇인가 용건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모두 정부에 하고 싶은 소망이기도 하였다. 정부에서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의원을 찾아온다는 식이었다. 민심을 읽기 위해서는 내방객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만났으면 좋았으나, 내가 자리에 없을 때는 거의 돌려보내는 정도였다. 내방객 중에 술이 취해 들어온 중년 남자 한 명은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실제 민원을 가지고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도 면담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역구 의원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지역구에서 학연이나 친척의 소개를 받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민원인들은 바로 유권자들이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차비조차 주어 보낸다고 하였다.
어쨌든, 정치 일선에 첫발을 딛은 나는 기업운영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독특한 세계를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