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AMD가 마이크로프로세서 신제품의 모델명을 K-시리즈로 붙였다. K는 슈퍼맨이 빛을 쪼이면 마력을 잃고 죽게되는 신비의 보석 이름 맨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AMD는 라이벌 인텔을 슈퍼맨으로 지칭하면서 자사의 신제품이 인텔을 거꾸러뜨리는 신비의 보석 역할을 해내고야 말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낸 것이다.
최근 외신이 보도한 ‘레드먼드의 야수 귀환’이라는 내용도 비슷한 케이스에 속한다. 여기서 ‘야수(野獸)란 마이크로소프트를 뜻하고 꼭 1년 전 미 연방정부로부터 분할명령을 받은 MS가 부활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MS에 야수란 별명을 붙여 준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 MS에 시달리던 넷스케이프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야수 MS’가 화려하게 컴백했다. 끝이 없는 독점욕으로 전세계 대부분의 IT업체를 적(敵)으로 돌려 놓고도 모자라 정부까지 나서 회사 분할 명령을 내릴 때만 해도 MS제국의 해는 서산에 기울 것으로 예상됐다. 그 사이 시스코가 IT황제의 자리를 차고 앉았고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컴팩, 오라클, 델 등이 각광 받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MS는 부활했다. 더욱 극적인 것은 그간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경쟁자들이 닷컴 몰락과 함께 쇠퇴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스코가 주저앉고 선이 부진하다. 그래서 MS의 컴백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MS는 보유 현금만 300억달러가 넘고 주가 역시 최정상급이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PC OS는 기본이고 기업용 시장에서도 견줄만한 상대가 없을 지경이다.
한국MS도 잘 나가기는 마찬가지다. 2001회계연도 외형이 2700억원을 돌파(번들물량 등을 포함하면 6000억원 추정), 전년대비 성장률이 무려 70%에 육박했다. 오라클 등을 제외한 여타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매출 감소에 허덕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결과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MS가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다. MS의 매출 폭증과 함께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쟁사들은 MS가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 각 부분별시장의 싹쓸이에 나섰다고 열을 올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돈만 벌어갔지 한국사회에 공헌한 것이 도대체 전혀 없다며 각(角)을 세운다. 심지어 IBM, HP 등 다국적 하드웨어벤더들은 물건을 파는 것에 비례해 반도체 등 국산제품을 사주고 수출하는 역할이라도 하지만 MS는 수익 챙기기에만 정신이 없다고까지 힐난한다. 물론 MS나름대로 항변할 대목이 많겠지만 국민 일반의 정서가 그렇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한국은 헌법위에 ‘국민 정서법’이 있다는 말처럼 기업활동에 국민 정서가 강조된다. 이런 판에 전 국민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취급하고 목에 올가미나 씌우는 불법복제 단속 포스터를 만들고 임직원이 입건되는 물의까지 일으켰으니 MS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리 만무하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일수록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없다. 잘 나갈수록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도 국민감정에 반하는 일을 하고선 배겨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MS는 지금부터라도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않을까 싶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