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랜 시장에 업체 난립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무선 랜 업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반면 시장규모는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성장하고 있어 기대에 못미치는 성장속도에 따른 업체간 과당경쟁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5월 말 기준으로 무선 랜 제품에 대해 전파연구소로부터 형식등록을 취득한 업체 수는 60여개. 지난해 같은 기간 10여개 업체에서 하반기 이후 무려 6배가 늘어났다.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무선 랜 시장규모는 내수만 합쳐 15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하반기 무선 랜 시장은 7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산술적으로는 두 배 가량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하는 업체 증가수를 고려할 때 성장속도가 예상에 크게 못미친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IEEE802.11b 규격이 무선 랜 국제표준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전세계적으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고 가격도 대폭 낮아진 점을 들어 무선 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그러나 무선 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불황 탓에 수요 진작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모 벤처업체 대표는 “무선 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는 있지만 불경기에 신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해 구매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무선 랜 수요처는 아직 대학, 유통, 관공서 등에 머물러 있는데 업체는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업체의 경쟁력 저하도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짧은 기간 동안 업체 수가 급증한 데는 새로 생겨난 대부분의 업체가 유통업체여서 제품개발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 전파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무선 랜 업체의 3분의 2 가량인 40여개사가 외산 제품을 들여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무선 랜 카드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대만산이 국산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부 업체는 장기적인 경쟁력 제고를 생각하기보다는 눈앞의 시장을 바라보고 뛰어든 경우여서 건전한 시장풍토 정착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장비 입찰 프로젝트가 품질보다는 저가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며 “이제는 무선 랜 업체들이 내수보다 수출을 바라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