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왜 중요합니까.”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모 정보기술(IT)업체 사장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누군가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시종일관 한국이 자사의 미래 성장전략에 있어 중요한 국가 중 하나며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노라고 거듭 강조했기 때문에 ‘정말 그 정도로 한국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기던 참이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 중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 중 하나며 IT시스템 측면에서도 다른 국가보다 2∼3년은 앞서 있다고 답변했다. 즉 한국이 어떤 IT신기술을 도입, 활용하면 그것을 보고 다른 국가들도 따라오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장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의 발언내용 중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중간에 “다른 국가는 IT수용에 신중하고 정부의 규제도 심한 편이지만…”이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내게 “한국은 IT수용에 성급하고 정부도 덩달아 이를 부추기고 있어…”라는 말로 들렸다. 외국 업체들이 시장전략을 짤 때 “한국은 잘만 꼬드기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팔기 정말 좋은 지역”이라며 키득키득거리는 장면까지 연상됐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세계 IT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위상강화는 국내 기업과 정부가 새로운 IT에 적극적으로 눈돌리고 선진적인 시스템을 남보다 먼저 도입한데 따른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한번 뒤집어서 IT활용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각종 IT기술의 경연 무대이자 세계 대기업이 벌이는 IT전쟁의 대리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테스트베드에 불과하다. 최근 IT 거물들의 잇단 방한 역시 이 역할을 지속적으로 좀더 잘 해달라는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전사적자원관리(ERP)를 제대로 구축해서 잘 쓰고 있는 업체가 몇 개나 되냐’는 물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객관계관리(CRM) 열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이 역시도 성공 사례 하나 없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또 기업정보포털(EIP)이 대유행이다. 해당 기업에 맞는 정보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최신 정보시스템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는데 급급해 수많은 IT투자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보다 앞서 도입해 위상을 높이기보다는 제대로 잘 구축해 위상을 높일 때가 됐다. ‘한국 기업이 구축한 IT시스템은 정말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