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당신의 말은...

◆이현덕 논설위원실장 hdlee@etnews.co.kr

 

 아해 다르고 어해 다른 게 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기에 따라 상대방이 받이들이는 느낌은 천양지차다. 천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 처세에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중국의 화술가인 소진과 장의는 전국시대 세 치의 혀로 백만대군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다. 동문수학한 두 사람은 각기 합종책과 연횡책을 주장해 한 시대를 좌지우지한 인물들이다. 말은 하기에 따라 사람의 목숨도 빼앗는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가 조조에게 사로잡히자 “충성을 다할 테니 살려 달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유비가 조조한테 말했다. “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여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부인 동탁을 죽인 과거 일을 되살린 것이다. 그러자 조조는 “의리없는 놈”이라며 무예가 출중한 여포를 죽이고 말았다.

 이 지구상에는 200만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가진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사에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이 말로 시작하는 까닭이다. 노벨상 수상자로 ‘정글북’을 쓴 영국의 키플링은 “말은 인류가 쓰는 가장 강력한 약”이라고 했다.

 이조 500년사를 통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말을 한 인물로 정승 황희를 들 수 있다. 황희가 그렇게 된 것은 본디 천성이 온화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시절 길을 가다 만난 시골노인한테 얻은 교훈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소 두 마리로 밭갈이를 하는 노인을 보자 물었다.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노인은 일손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귓속말로 황희에게 소의 우열을 알려 주었다. 황희가 의아해 하자 노인은 “아무리 짐승이라도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언잖지 않겠습니까.” 그후부터 황희는 말을 부드럽게 가려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광해군은 신하의 말듣기를 싫어했던 임금이다. 집권 내내 폭정을 일삼던 그는 사간원의 간언이 듣기 싫어 신하들의 목에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죽이는 도끼”라는 패를 달고 다니게 했다.

 하지만 개인이건 공인이건 자신이 한 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고위층·정책입안자·정치인·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일수록 말은 천근의 무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채근담에도 “한마디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천마디의 말을 더 해도 소용이 없다. 핵심이 없는 말은 입밖에 내지 말라”고 했다.

 최근들어 언어가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문제의 본질보다는 인신공격이나 감정대립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 유난히 잦다. 설령 입장이 달라도 우호적인 표현과 정감어린 표현, 감정보다는 본질에 초점을 맞춘 표현, 인격을 모독하는 표현이 아닌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 또는 대안 제시 등에 초점을 맞춘 말을 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저만큼 밀어놓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지엽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말싸움만 해서는 곤란하다.

 세련된 표현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은 남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상대가 지적한 내용 중 옳은 것이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고쳐야 할 일이다. 탈무드에 ‘인간은 입이 하나인데 귀는 두 개다. 그것은 말을 적게 하되 남의 말은 두 귀로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는 말이 나온다. 참고해야 할 경구다.

 지금 우리는 경제난에다 절기상 장마까지 겹쳤다. 제조업체 10곳 중 4곳은 이자도 감당못할 정도라고 한다. 가뭄 끝에 내린 비로 논밭이 유실돼 마음이 상해 있는 농민도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의 위험을 걱정하는 주민들도 많다. 국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안이나 자금세탁방비법 등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여야의 줄다리기로 지연되고 있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정제되고 절제된 표현을 하고 일단 한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현자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