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특약=iBiztoday.com】미국 기업들이 유럽연합(EU)의 새 프라이버시 보호 규정인인 ‘세이프 하버’ 협약 가입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가 미국과 EU간 무역 분쟁의 새로운 불씨가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관행화된 자의적 사용자 정보수집 행위가 유럽 사법기관의 소추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면서도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이 결과로 현재 이 세이프 하버 협약에 가입한 미국 업체 수는 71개사로 저조하고, EU는 강한 불만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 권리는 강력한 법체계에 의해 보호된다고 보는 유럽인과 역사적으로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는 미국인간의 견해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EU는 지난 98년 소유자의 명백한 허락이 있을 경우에만 개인 데이터의 교환을 허용하고 이 데이터가 EU 15개 회원국에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 표준이 결여된 나라로 유출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 조치는 미국 기업과 관리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이들은 고객 명단·봉급명세서·직원 급여 등 모든 정보의 공유를 금지시키는 것은 국제 상거래를 해친다고 맞섰다.
미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위원장인 빌리 타우진 의원은 “EU 프라이버시 지침이 사실상 전세계 프라이버시 표준 역할을 한다”며 “그것은 분명 EU의 의지를 미국에 강요하려는 시도”라고 강력 비난했다.
미국과 EU 관리들은 미국 기업이 제재 없이 대서양을 가로지른 기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세이프 하버’를 협상을 통해 제정했다. 하지만 미국 업체들은 이 협정의 서명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세이프 하버 가입을 꺼리는 쟁점은 가입 조건인 철저한 회계 원칙이다. 이들 업체는 이로 인해 유럽 사법기관의 강제적 조치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이프 하버는 기업이 내부 데이터-프라이버시 행태가 특정 표준에 부합한다고 입증하는 자율규제기구를 만들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소비자에게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알려줘야 하고, 소비자가 항시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며,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가 외부인에게 공유되는 것을 중단시킬 권리를 유보하고, 업체는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관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기업들은 동시에 소비자 불만이 내부적으로 처리되지 못할 경우의 분쟁 해결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EU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의 조너선 토드 대변인은 “기업들이 세이프 하버에 가입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여기에는 진짜 의무가 따른다”고 밝혔다.
세이프 하버 협상의 전 미국 측 대표인 웰 버리는 “지난 1일로 유럽의 프라이버시 당국자들이 미국 기업을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는 협상유예기간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이 조사가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인텔·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업체가 이미 세이프 하버에 가입했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도 이들 업체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U가 지난 4일 GE-허니웰 합병을 막는 결정을 내린 뒤 미국-유럽간 기본적 정책 차이는 이미 현안으로 부각된 상태다. EU의 이 결정은 미국의 자유방임적 정책 전통에 맞서 유럽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 정책 결정자들에게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다.
<케이박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