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PL법 `역기능`

 지난 70년대 산업화 시기 우리네 기업들은 애국심을 담보로 한 우리 소비자들의 국산품 애용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외국제품에 비해 조잡한 제품 수준이나 애프터서비스는 성장 지향의 국가 정책이라는 대명제 아래서는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소비자 의식도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내년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제조물책임법(PL법)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문제 발생시 제조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PL법은 제조물의 설계가 복잡해지면서 제조자는 제품의 결함을 비교적 용이하게 발견해 낼 수 있는 반면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근본적인 제품 결함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PL법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도입돼야 함은 물론이다. 실제로 선진 각국은 이미 PL법을 도입해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PL법이 지난 99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하는 선진국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준비 부족과 시행착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정책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는 모습을 우리는 수도 없이 지켜봐 왔다. 시행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은 PL법도 보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잘못된 과거의 답습은 불을 보듯 뻔하다. PL법이 시행되면 제조물 결함의 유무 및 손해와의 인과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대개의 경우 이들 쟁점들이 애매하기 때문에 소송이 증가하고 소송으로 인한 업계 부담이 가중돼 파산 또는 사업을 철수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까지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

 PL법을 먼저 도입한 선진 외국의 시행착오는 우리에게 많은 사회적 비용 절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까운 일본은 분쟁조정센터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마찰을 최소화했고 유럽 등은 보험 제도를 적극 활용해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선진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PL분쟁조정기구 등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기업들은 PL법 시행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 왔고 문제가 발생해도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여 육성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은 소송 발생이 곧 파산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디지털경제부·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