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특허전쟁에 대비하자

◆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

 

 21세기 디지털시대의 화두는 특허다.

 핵심 원천기술에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BM)에 이르기까지 안 걸리는 게 없다. 국제표준과 직결되는 특허가 국가정책을 좌우할 정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허분쟁의 열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뜨겁다.

 누가 더 빨리 우수한 기술을 권리화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갈리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경쟁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특허분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피앤지와 킴벌리클라크의 일회용 기저귀 특허분쟁의 경우 무려 40여년 동안 소송과 역소송이 이어졌으며 폴라로이드와 코닥의 즉석 카메라 특허 논쟁은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복잡한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폴라로이드에 즉석 카메라 필름을 공급하던 코닥의 시장진출을 계기로 비화된 이 전쟁에서 양측은 10여명의 변호사가 100건 이상의 진술조서를 작성했으며 사실조사 절차를 완결하는 데만 무려 5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기업의 사활을 걸고 벌이는 특허전쟁의 무서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특허분쟁이 선진 외국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특허공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단말기 제조업체인 텔슨전자와 어필텔레콤의 광역 무선 호출기술에 대한 특허공방을 비롯해 일본의 원천기술 특허를 가진 린나이코리아와 토종 브랜드인 경동보일러의 보일러 핵심부품 특허 분쟁, 반도체 설계업체인 미국 램버스와 국내 반도체업계 간의 특허공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분쟁은 향후 전개될 특허전쟁의 예고편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디지털시대의 총아인 인터넷을 둘러싸고 벌어질 특허분쟁의 파고가 조만간 지구촌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허 경쟁력에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특허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마디로 경쟁력을 논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다.

 특허기술 수출액이 수입액의 10%에도 못미친다. 또 정보통신업계의 연구개발비를 통틀어도 미국의 한개 통신업체가 투자하는 금액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인간 게놈 분야의 경우 5∼15년 뒤져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선진국과는 비교하기 힘든 것이 우리 특허기술의 현주소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심화되는 특허경쟁과 전략적 대응’이라는 보고서는 이처럼 심각한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특허 등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외국에 지불한 기술료는 무려 29억달러를 웃도나 벌어들인 수입은 2억1000만달러에 그쳤다고 한다. 퀄컴이라는 한 업체에 지난 5년간 지불한 CDMA 로열티만 1조원 이상이라니 참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뿐 아니라 디지털 TV와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로열티로 각각 판매가의 11%, 15%를,PC는 매출액의 10%를 IBM·마이크로소프트·TI사 등에 지불해야 하며, 반도체 분야는 매출의 12%를 TI·인텔·IBM 등에 줘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향후 세계시장을 주도하게 될 바이오 분야는 더욱 취약하다. 미국에 등록된 국내기업의 바이오 특허건수가 미국기업의 14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다. 일본은 한국의 20배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인간게놈 관련 기술이 뒤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유전자를 이용한 의약품개발 특허가 1건도 없을 정도라니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자 부문의 삼성전자와 반도체 부문의 하이닉스가 특허경쟁력 세계 10대 기업에 각각 4위, 8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지만 통신·컴퓨터·자동차·화학분야 기업이 랭킹에 진입하는 것은 요원한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허의 위력이 커질 뿐 아니라 기술력 부족에 따른 로열티 부담이 우리 제품의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민관이 힘을 모아 장단기 특허획득 전략을 수립하는 등 새롭게 전개될 특허전쟁에서의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