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PC탄생20년과 윈텔

 ◆이택 IT산업부 팀장 etyt@etnews.co.kr

‘윈텔, 너만 믿는다.’ 예상보다 악화된 시스코의 실적발표 탓에 지난 9일 나스닥시장이 심리적 지지대였던 지수 5000선마저 맥없이 무너졌다. 이제는 월가는 물론 전세계 IT업계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만 쳐다보고 있다. 바닥이 어딘 줄 모를 정도로 곤두박질치기만 하는 세계 IT경기를 회생시킬 유일한 카드가 MS와 인텔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MS와 인텔이 위기의 IT산업 해결사 또는 구원투수로 등판해야 한다는 주문에는 심지어 이들의 경쟁사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만큼 IT불경기는 심각하다.

 MS는 IT업계에서 단골로 도마에 오르는 회사다. 컴퓨터산업 발전에 미친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확장욕, 결코 지배력을 빼앗기지 않는 노회한 마케팅기법 등의 이유로 경쟁사들에는 ‘원성’의 대상이다. PC산업을 이끌어온 인텔 역시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독식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MS의 윈도와 인텔의 합성어인 윈텔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PC시장에서 차지하는 두 회사의 위상 탓도 있지만 동시에 MS와 인텔의 영속적 시장지배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런 판에 윈텔에 눈길을 주는 이유는 MS와 인텔(윈텔)만이 IT위기 극복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윈텔은 약속이나 한 듯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MS가 윈도XP 출시를 선언했고 이에 발맞춰 인텔은 펜티엄4 2㎓ CPU를 선보인다. 더구나 주가폭락으로 대부분의 IT기업이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는 것과 달리 윈텔은 풍부한 현금 보유량을 자랑한다. 신제품 홍보와 마케팅에 쏟아부을 자금까지 갖춘 셈이다. 이제 윈텔이 PC경기 회복의 불씨를 지피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윈텔은 윈도XP 출시를 앞두고 10억달러를 투입한 공동 마케팅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윈텔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미국의 PC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 이전에라도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IT경기가 조금씩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게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과거의 사례를 상기해보라고 말한다. 윈텔이 전략적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PC산업은 한단계씩 도약했고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 나아가 전반적 IT경기까지 호황세를 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윈텔의 약효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인텔은 최근 펜티엄4 CPU 가격을 계속 인하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텔의 값 내리기가 PC가격 인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촉진으로 연결돼 불황을 탈출하거나 호황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지만 최근에는 이같은 약발이 제대로 안 먹히고 있다. 인텔이 CPU 값을 인하해 PC가격이 떨어져도 수요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MS가 야심차게 들고 나온 윈도XP 역시 신제품의 콘셉트 발표만으로도 IT경기가 들썩였던 과거와 달리 시장을 떠받칠지 속단하기 어렵다. 더구나 XP와 관련된 법정공방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올해는 IBM 호환PC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되는 해이고 총아는 누가 뭐래도 윈텔이다. 지난 20년의 PC 역사는 곧 윈텔의 성장사였지만 앞으로의 주인공이 누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윈텔의 승부수가 그래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