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나 성공사례로 꼽는 SK텔레콤의 TTL 마케팅과 광고가 첫선을 보일 때의 이야기다. 시장진입과 착근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세대 감성에 호소할 획기적 광고 콘셉트라고 판단한 SKT는 비밀스런 작업을 진행, 촬영과 편집을 마쳤다. 남은 것은 회사 경영진이 모인 자리에서 시사회를 갖고 OK사인을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은 아연실색했다. 도무지 광고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정남 부회장(당시 사장)은 “처음 봤을 때 어리둥절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대사도 없고 스토리도 없이 그져 이미지만 넘쳐날 뿐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경영진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신세대는 신세대의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실무진의 건의가 이어지자 고민 끝에 ‘부하들을 믿고’ 이를 수용했다.
이렇게 햇빛을 보게 된 TTL광고는 엄청난 충격과 화제를 모았고 그 이후 상황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스무살의 TTL’이라는 문구가 말해주듯 불과 얼마전까지 통신사업자들의 마케팅 대상은 20대 젊은층에 맞추어졌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13/18이니 뭐니 하면서 10대를 주요 타깃으로 삼는 마케팅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포화상태인 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가장 충성도가 높은 미래의 잠재고객을 선점하겠다는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이다. 사이버 시장에서 10대를 겨냥한 마케팅은 우리보다 미국의 신용카드, 인터넷회사들이 한 발 앞서 있다. 비자와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인터넷업체들과 제휴, 12∼18세의 10대 전용 카드를 선보인 바 있다. 9개월 전의 일이지만 벌써 30만명 이상의 고객을 모았다는 보도도 있다. 이처럼 인터넷 주역 10대가 마침내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예비군’으로 등장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이를 T커머스(10대 카드+인터넷+소비본능)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T커머스에는 ‘철부지 10대를 겨냥한 기업들의 지나친 혹은 얄팍한 상술’이라는 비판이 늘 따라다닌다. 한국에서는 이미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신세대들이 이동전화를 과다하게 사용, 엄청난 요금 처리에 발목이 잡히고 또 이것이 종종 사회문제화된다. 이런 판에 10대까지 상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쩌면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늘 자신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며 불안해한다. 카드를 이용한 과소비나 통신요금 과다문제는 기성세대도 똑같다. TTL이 보여주듯 10대를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고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은 충고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초등학생까지 이동전화를 갖고 다닌다며 정보통신 강국으로 치켜세우면서 우리가 그렇게 하면 과소비요 기업들의 무분별한 상술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초등학교 학생에게 통장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저축 습관을 기르고 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적 수단이다. 인터넷과 이동전화도 마찬가지다. T커머스는 이미 현실이고 예상되는 부작용은 정부와 기업,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제어하면 된다. T커머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기준일 뿐이다. 서태지가 데뷔했을 때 그를 이해하고 지지한 기성세대가 혹시 있었을까.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