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산 장비 푸대접이라니

국내 대형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신규 설비투자를 진행하면서 국산 장비를 외면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이는 기술력 하나로 장비시장에 진출한 국내 IT벤처기업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나아가 국산 제품의 수요 기반을 와해시켜 이 분야의 국산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국산화해도 판로가 없다면 그 기업은 지속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지금은 국내외 경제환경이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제2의 경제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유선통신 시장의 양대산맥인 한국통신과 하나로통신이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용 무선LAN 구축사업을 추진하면서 외국 업체에 유리한 규격을 제시해 궁극에 가서는 국산 제품의 수요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이는 가벼이 볼 수 없는 문제다.

 물론 국내 IT업체들이 상용화한 장비의 품질·성능에 결정적 결함이 나타났거나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용으로 부적합하다든지 하는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다면 문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국내 무선LAN 시장은 국내 IT벤처들이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 노력한 결과 상당 수준 국산화가 이뤄진 상태고 앞으로 내수를 바탕으로 수출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나름대로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IT벤처업체들이 자신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통신이 최근 초고속 무선인터넷 시범망 구축사업용 장비를 발주하면서 장비규격에 인증 관련 프로토콜의 일종인 802.lx를 필수규격으로 명시해 국내 업체들의 참여 기회를 막는 결과를 낳았다면 재고해야 한다.

 한국통신이 이번에 명기한 장비규격이 아직 공식 표준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도입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은 이에 대해 “기술적 보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지만 국내 업체들은 미검증된 기술규격이란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로통신은 미국 무선LAN 관련 사설단체인 WECA의 인증마크인 WiFi를 획득할 것을 장비규격에 명시해 관련 업체들로부터 외화를 낭비하게 만든

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당업체들은 WiFi 인증이 미국의 FCC나 유럽의 CE마크처럼 공인기관의 인증이 아닌데다 어느 수준에 도달한 제품은 어렵지 않게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1만5000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들여 인증을 획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국가기간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이나 하나로통신이 통신시장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비자 신뢰나 효율적인 투자, 국제규격에 맞는 제품 구매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과 기술적인 측면이나 여러 가지 심사숙고해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기업과 IT벤처기업간에 공동 기술협력사업을 확대하고 아웃소싱 기반을 조성하면서 해외 공동마케팅을 지원하는 등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통신은 무선LAN장비 발주에 중소 IT벤처업체들의 참여를 최대한 배려해야 하며 하나로통신도 무선LAN장비 규격에 명기한 WECA의 인증마크 획득사항을 다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이런 후속조치가 없다면 결과적으로 국산 제품을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곧 국내 무선LAN장비 시장의 기반 와해와 직결되기 때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