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들은 한국기업을 너무 믿어서 사기를 당한다.”
중국에서 만난 현지 인터넷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바로 중국내 IT 브로커들에게 쉽게 속아 막대한 자금을 날리는 한국기업들의 잘못된 중국행 관행을 꼬집는 것이다.
이 중국인 관계자는 “얼마전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모기업이 중국 관영언론사를 사칭해 공동 주체로 한중 IT교류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한국업체들로부터 사업비 추진비를 받아 중간에서 가로챈 일이 있다”며 “중국에서는 관영언론사가 민간기업과 행사를 공동 주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한국사람들은 그대로 믿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전화 한통이면 확인이 가능한데도 그것조차 안하는 게 한심스럽다는 뉘앙스가 배어 있었다.
현재 중국의 한국계 IT 브로커들은 재중교포(조선족)와 유학생이 만든 소기업, 다른 사업을 하다가 IT컨설팅업체로 변신한 기업들이 대종을 이룬다. 이들의 숫자는 지난해부터 급증, 현재는 200여개사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30∼40개사를 제외하고는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로부터 당한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족과 공동으로 합작사를 설립했던 인터넷 포털 A사의 경우는 자본금 100만달러를 설립 6개월만에 전액 잠식당한채 현재는 사이트조차 폐쇄해버린 상태이다. 회사명의로 빌려줬던 수억원도 받지 못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A사 대표는 현재 주주들로부터 사업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다.
국내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인 B사도 한국계 컨설팅업체와 함께 현지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중국어 제품을 주요 전시회에 출품시키는 등 활기찬 출발을 보였으나 현재는 사무실 자체를 PC방으로 변경한 상태다. 현지에서는 한국계 컨설팅업체에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국내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기업들의 이같은 수모는 모두 무리한 중국행이 불러들인 실수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7년동안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한 기업가는 “에릭슨과 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10여년 전부터 중국에 들어와 초기 몇년간은 시장조사만 했다”며 “국내기업들은 대부분 주는 것 없이 벌어서 나가려는 욕심만 앞선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이같은 조급함이 편법을 낳게 되고 바로 이 틈을 브로커들이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시장도 ‘정도(正道)’를 걷는 게 중요하다.
<베이징=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