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특약=iBiztoday.com】 실리콘밸리 직장인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경제적이라기보다 문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돈 때문이 아니라 일 자체가 좋다는 생각에 밤잠을 아껴가며 많은 시간을 직장생활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실리콘밸리의 돈줄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아직도 열심히 일할 마음을 가진 직장인은 크게 줄고 있다. 오후 8시가 넘어도 빼곡했던 직원 주차장은 오후 5시 30분만 돼도 텅텅 빈다. 사무실에서 대충 때우던 점심도 이제는 밖에 나가 그럴듯한 외식을 즐기는 쪽으로 변했다. 식사 중에 회사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간다는 것은 이제 상상하기도 힘들다.
실리콘밸리의 패티 윌슨 카운슬러는 “전에는 닷컴이 약속하는 부와 명예, 돈과 기회를 잡기 위해 눈이 반짝거리는 직장인들이 많았다”며 “그러나 이들은 닷컴 몰락과 경기 침체로 현실에 눈을 뜨게되면서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것일까’라고 자문하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제 주 80시간 근무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운동을 하거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이같은 추세를 재빨리 간파하고 직원들의 여가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오베론파이낸셜테크놀로지는 최근 전 직원에게 라켓볼 클럽 회원권을 지급했다.
이 회사의 조수아 메이어 총무부장은 지나친 근무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만 할 뿐 회사나 본인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일 때문에 지치고 있다는 것을 3개월 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사장의 권유로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
메이어 부장은 친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요즘은 스쿼시를 시작해볼까 생각중이다.
실리콘밸리 직장인들이 그동안 장시간 근무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신경제 확산이 부른 ‘황금 러시’ 때문이다.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려면 회사의 경영실적이 좋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각오가 돼 있었던 것이다.
윌슨 카운슬러는 “전에는 상담 고객들 가운데 ‘회사를 성공시켜 돈을 벌고 나면 일도 줄이고 인생을 즐기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이제는 이런 계획을 포기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직장인들의 근무시간 감소 추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실리콘밸리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가정과 직장을 모두 신경써야 하는 여성 직장인들이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감원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근무시간을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늘리고 있는 직장인들도 일부 있다. 회사의 감원조치로 일손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일감이 늘어난 직장인들도 있다.
한 직장인은 “요즘은 왼발, 오른발하며 걸음마 단계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앞날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루고 현재에 충실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