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北 IT정책과 남북교류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uhjj@kinu.or.kr

  

 북한이 2001년 들어서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높이에서 보고 풀어 나가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신사고라고 해석되면서 북한이 이제 개혁개방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소위 신사고 개념의 핵심내용은 체제의 개혁개방이 아니라 IT산업 육성을 통한 새로운 경제발전 정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새로운 경제발전 정책에서 IT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IT산업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남북 IT 교류에 참여하는 기업들도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다.

 우선, 북한이 IT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스탈린주의적 경제체제 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희망하는 개혁개방의 기준을 시장제도, 사유제도, 물질적 인센티브 제도의 도입으로 본다면 북한은 최근 이 세가지 기준에서 과거의 사회주의로 역행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인민경제계획법’은 시장 생성을 억제하기 위한 법안으로서 식량난 이후의 자생적 암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98년부터 시작된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의 전개는 군중동원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전통적 방식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물질적 인센티브 제도의 도입 여지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파악할 수 있다. 98년 시작되어 강원도와 평북에서 완료되고 이제 황해남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토지정리사업을 통하여 북한은 토지사유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토지정리사업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논두렁을 없애고 800평 이상의 큰 규모로 통폐합하는 작업이다. 옛날의 논두렁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유제의 흔적이 말끔히 없어졌다는 의미에서 북한은 46년의 토지개혁과 58년의 농업협동화에 이어 이제 비로소 토지제도의 사회주의화를 완성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봉건적 자본주의적 토지소유를 비롯한 사적 토지소유제도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악을 낳는 근원이며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를 저해하는 제 동기가 된다고 보았다. 특히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원인이 토지사유제에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북한의 이런 정책적 조치가 의미하는 바는 당분간 사유제로의 변화가 없으며 시장제도의 도입이 없고, 물질적 인센티브제의 도입 또한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이 세가지 정책적 조치의 특징은 식량난 이후 흐트러졌던 사회주의 체제의 원형을 다시 수선하는 작업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북한의 IT 산업은 사회주의체제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 추진되고 있다. 오히려 기존체제의 변화없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IT산업이라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는 IT산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IT산업의 가장 큰 목적은 기존의 경제체제와 산업 공정에 대한 자동화·정보화를 심화하여 사회주의의 중앙계획적 통제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기존산업의 ‘기술개선’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부수적인 목적이 IT 관련 프로그램 개발이다. 산업의 자동화·정보화에 필요한 기술개발과 동시에 해외에 수출하여 외화도 벌자는 전략이다.

 북한은 IT산업을 기존체제의 변화없이 오히려 기존체제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액세서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IT산업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IT 산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체제변화를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남북한 IT 교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북한의 체제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북한이 IT 교류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IT산업을 프로그램 산업 위주에서 정보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한 기업이 북한에서 추진하고 있는 위성인터넷 설치사업이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