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시간이 주는 교훈

 산업자원부 과천청사. 시간은 에어컨이 끊어진 지도 4시간이 돼 가는 9시 44분. 6층 626호 국감장에는 18명의 산자위 의원과 산자부 장관, 산하단체장, 진행 관계자들이 내뿜는 열기로 때아닌 부채질이 한창이다.

 의원들의 질문이 끝나고 장재식 장관의 답변이 이어지는 시간. 갑자기 등장한 ‘LG반도체’라는 회사명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우리 기억에서 멀어져간 회사기 때문이다. 얘기의 요지는 LG반도체가 현대반도체를 인수했다면 지금의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한나라당 신영국 의원은 “합병 당시 전문가들 가운데는 LG반도체에 현대반도체가 합쳐지는 게 더 바람직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결국 정치적 논리에 의해 현대가 LG를 합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에 대해 장 장관은 “정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부채비율도 400% 정도로 두 회사가 비슷했고 합병 후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결국 반도체 가격하락 등 외부 요인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자 맹형규 의원이 거들고 나섰다. “당시 조사결과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때문에 구본무 회장은 눈물까지 흘렸다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산자부 국정감사. 18명 의원 가운데 6명이 하이닉스반도체를 거론했다. 국가경제를 흔들 만한 현안이고 원인을 알아야 알맞은 처방이 나온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LG반도체가 좋았다’ ‘현대반도체가 맞다’는 식의 발언은 서민이 소주 한잔 하면서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한탄할 때 나올 만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모든 산업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산자부를 상대로 한정된 시간을 소비하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이보다는 수출위기와 유동자금 부족으로 앞날이 불투명한 우리 기업들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 주기를 국민은 바랐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 서면답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결국 여느 국정감사와 마찬가지로 이날 산자부 국감에서도 이 말은 나오고야 말았다. 쟁점사안을 짚는 데만도 모자랄 시간이 돌이킬 수 없는 반도체 합병문제로 허송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