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세계 통신장비 제조업체 동향

얼마 전 루슨트테크놀로지·노텔네트웍스 등 해외 유수의 네트워크 장비제조업체는 국내 통신업체와 협력 관계 강화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경기침체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장비 및 부품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비용절감과 매출 확대, 그리고 아웃소싱 및 판로 확보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모토롤러·퀄컴 같은 이동장비 제조업체들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업체인 이다트(http://www.kdate.fr)는 아웃소싱으로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는 세계 이동장비 제조업체의 근황을 분석했다.

 지난 7월 27일, 광통신 시장에서 ‘신기술’을 상징했으며 전세계 주요 제조업체에 광컴포넌트를 공급한 JDS유니페이즈(JDS Uniphase)가 2001 회계연도에 510억달러의 사업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한때 세계 1위의 통신장비 제조업체이던 루슨트가 자사의 기업 네트워크부문 자회사인 아바야를 분리하기 전까지 올린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통신업계 장비업체들은 시장을 너무 앞서가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많은 장비제조업체들은 그동안 제품 판로 창출 등을 위해 통신사업자 설립 등과 같은 여러 사업모델을 개발해왔다. 이론적으로 이 전략은 사업자를 후원하는 제조업체가 생산하는 장비에 대해서는 시장을 확보해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리듐(모토롤러가 후원)이 파산하면서 우주 분야에서 한계를 보여주고, 또 글로벌스타(퀄컴과 로랄이 후원)가 난관에 봉착한 지금 이 전략은 국제 장거리 시장에서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알카텔이 펀딩한 360네트웍스가 파산했으며, 이미 2001년 2분기 7억31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레벨3 등 많은 통신업체들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다.

 장비제조업체가 제품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기술 장비 교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PC 시장의 컴퓨팅 같은 분야에서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노텔네트웍스의 차세대 10 고밀도파장분할다중화(DWDM) 기술이 1999∼2000년에 공개됐을 때 이런 유형의 기술과 전송률은 이 분야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장비 및 부품 가격이 2.5 기기와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뿐 아니라 대역폭의 가격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져 사업자들이 고객에게 고속서비스를 저가에 공급할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하지만 엔드유저 액세스부문(고정전화사업자와 케이블사업자) 사업자들은 가격정책 및 제품 공급에 있어 초고속사업자와 동일한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제 시장은 엔드유저에 의해 창출되는 수요가 흔들리게 됐다. 더구나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파이널 액세스 시장에 수요 발생이 없고 중계 시장은 수익성이 없는데 어떤 사업자가 40 업그레이드에 또 투자하겠는가. 이것은 바로 제품 판로 창출에 의한 매출 증가 전략이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규 이용이 없으면 새로운 전략은 쓸모가 없다.

 통신장비업계는 1999∼2000년의 ‘투기적’ 거품경제에 참여한 데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사실 이 기간에 통신장비제조업들은 높은 자본가치 평가액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 시기에 이 분야의 모든 거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시스코의 자본가치 평가액은 2000년 초 38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세계 최고 자리를 놓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금액이다.

 인수한 회사에 대한 과대평가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업체는 광케이블업계의 선두주자들이다. 제조업체의 재무제표에는 엄청난 금액의 영업권(goodwill)이 기록돼 있는데 이제 이 영업권은 대대적인 감가상각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JDS 유니페이즈는 99년과 2000년의 인수 금액에 상당하는 448억달러를 감가상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자들이 살아남는다면 장비제조업체들도 투자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업자들이 파산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장거리 전송 분야는 더욱 극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장비업체는 엄청난 재정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유럽·미국·아시아의 파이널 액세스 시장은 최소한 2002년까지 침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통신장비제조업체들은 중대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상황이 변한 시장의 한계에 적응하기 위한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구조조정 조치들은 글로벌한 장비제조업체 사업모델의 경우 더욱 근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퀄컴 등의 업체들이 공들여 창출한 ‘무공장(fabless)’ 모델이 전세계 제조업계에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 모델은 전체 제조공정을 솔렉트론·플렉트로닉스 같은 생산 전문회사에 맡기는 것이다. 이 새로운 모델은 장비제조업체가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활동에 전념하고 제조부문은 아웃소싱하는 한편 고객에는 정상급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업체 대부분은 이런 유형의 사업모델을 채택했다. 휴대폰은 교체 주기가 짧고 가전업계와 마찬가지로 제조업의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통신장비제조업체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업계의 생산용량 등 모든 문제를 아웃소싱하고 있다. 예를 들어 루슨트는 콜럼버스 제조공장을 캐나다의 가전제조업체인 셀레스티카에 판매했으며, 다른 공장을 임대하기 위해 5억5000만∼6억5000만달러를 지불했다.

 모토롤러는 마이크로칩·전력공급장치·소프트웨어·개발 및 시험도구 등 기술 제품을 경쟁사들에 판매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90년대 초 PC 제조업 분야에서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생산부문의 철수 결정은 장비제조업체들이 전통적인 사업과 단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R&D 및 생산부문이 세계2차대전 종전 후 여러 면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부문의 아웃소싱 및 공정의 합리화는 단기적인 처방이다.

 이는 장비제조업체들이 하도급 협력업체에 생산부문을 맡김으로써 침체의 영향을 잠시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줄 뿐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엔드유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통신업체들이 훨씬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정리=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