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발명해내는 과학기술의 열매 중에는 뜻밖의 연구 결과로 인한 것들이 많다. 과학자들이 당초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하고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던 현상들이 발견되고 그럴 때마다 당초 연구목표와는 달리 연구 자체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엉뚱한 아이디어나 연구 결과의 실패로 인한 우연한 발견이 한 나라나 기업을 살려내기도 한다.
1차대전 이후 인류를 구해낸 최초의 항생물질 페니실린이 곰팡이균에서 우연히 발견됐는가 하면 20세기 말 세계 남성들을 들뜨게 한 비아그라도 80년대 후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한 ‘구연산실데나필’이라는 물질이 정작 협심증에는 아무런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 채 노년층 남성협심증 환자들이 이 약의 부작용으로 일종의 회춘현상을 보이면서 발기촉진제로 당당하게 데뷔하게 됐다.
그런가 하면 최근 모토로라가 지난 30년간 세계 반도체업계의 꿈이던 실리콘과 갈륨 비소화합물을 결합해 기존 제품보다 처리 속도가 35배나 빠른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해 숙원을 이룬 것도 뜻하지 않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2003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반도체는 레이저 기법을 훨씬 싼값에 반도체에 채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반도체업계에 새로운 ‘반도체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0년간 과학자들은 실리콘과 갈륨 비화물을 결합시킬 때 구조적 특성 차이로 인해 균열이 생기는 현상을 막지 못해 상용화에 실패했으나 연구진은 난기술로 여겨지던 결합 문제를 실리콘과 갈륨 비소화합물 사이에 다른 연구 결과의 실패물로 내팽개쳐지다시피한 SVO라는 별개의 레이어를 삽입하는 방법으로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항공대 연구팀이 머리카락 25만분의 1 굵기의 나노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낼 수 있었던 것도 박사 과정에 있는 한 젊은 연구원의 우연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일반 사진관에서 사용하는 원시적인 사진인화기술인 광화학 반응의 원리를 이용한 것. 결과는 세계 반도체업계는 물론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에 그동안 백방으로 발모제를 개발해온 의약계와 소위 빛나리족들에 사이에서 최근 회자되고 있는 ‘프로페시아’도 사실은 전립선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전신에 털이나는 부작용으로 발모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남성탈모치료제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처방전이 필요한 이 약은 발모 효과가 높아 뭇 빛나리족들은 괜한 오해를 받아가며 처방전을 발부받기에 급급하다는 전언이다.
과학기술이 몇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발전해왔지만 이처럼 심심찮게 일어나는 행운, 이를테면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도 인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테러 대참사를 보고 있노라면 테러범들이 고작 생각해낸 ‘비행기 폭탄’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심심찮게 일어나는 행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고는 하지만 그따위 망나니 같은 아이디어는 생각해내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인류에 도움을 주는 길이다.
<정창훈 과학기술부 팀장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