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이 준비중인 유선전화 인터넷서비스 ‘리빙넷’에 대해 국내 전화기제조업체 대부분이 서비스를 지원할 단말기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연내로 예정된 서비스 개시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한국통신은 유선전화기로 단문메시지서비스(SMS)와 인터넷정보검색이 가능한 ‘리빙넷’ 서비스를 오는 11월부터 제공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본지 9월 6일자 6면 참조
그러나 삼성전자, 태광산업 등 국내 주요 단말기제조업체들은 올해 안으로 이 서비스를 지원하는 단말기를 생산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내년 제품 양산을 위한 생산라인 구축 계획에 조차도 리빙넷을 위한 전용단말기를 포함시키지 않는 등 1년 전부터 제품을 계획했던 발신자번호표시(콜러ID)단말기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체 현황=삼성전자는 일단 오는 연말까지 ‘리빙넷’ 단말기 출시계획을 세워놓고 있지 않다. 삼성은 내년 2월 선보일 한 개 모델에 대해서도 양산일정을 잡지 않고 유보해둔 상태다.
태광산업 역시 내년 상반기 양산 설비투자 대상 제품 가운데 한국통신 ‘리빙넷’ 서비스가 가능한 단말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광은 7, 8월 비수기를 지나 빠르면 내년 9월 이후에 1, 2개 모델을 출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오는 11월부터 리빙넷 시범서비스를 위해 한국통신에 시험용단말기를 공급키로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양산 계획은 아직 없다.
LG전자 관계자는 “한국통신 시범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는지를 판단한 후 구체적인 양산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LG·태광 등 메이저 전화기업체가 시장진입을 연기함에 따라 이트로닉스·아이즈비전·데이통콤 등도 일제히 제품개발 진행과정을 늦추고 있다.
이트로닉스 관계자는 “콜러ID서비스의 경우에도 당초 한국통신이 서비스 개시시점을 지난해 연말이나 올 1월이라고 말해 제조업체들이 3, 4개월 동안 재고를 감당해야 했다”며 “리빙넷서비스의 경우에는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이후에 양산을 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화기시장 악재=전화기업체들이 리빙넷 단말기 개발을 미루는 까닭은 제품 개발시의 기술적 어려움보다는 신규 단말기 출시가 전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은 올초 콜러ID단말기를 출시한 지 채 1년이 안된 시점에서 또다른 기능을 추가한 전화기 판매를 개시할 경우 기존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신모델을 출시했을 때 금형비를 회수하려면 모델당 최소 3만대 이상을 팔아야 한다. 판매대수를 매월 3000대로 가정하더라도 최소 10개월 동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업자가 콜러ID서비스가 시작한 지 불과 7, 8개월 만에 또다른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제조업체로서는 마케팅에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자가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할 제품 개발비나 마케팅 비용, 그리고 이에 따른 손익분기점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독단으로 서비스를 추진하는 것은 무언의 횡포가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콜러ID서비스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제조업체와 사업자간 불신이 쌓인 것도 제조업체가 신규 단말기 개발에 주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콜러ID가 서비스 초기부터 개시시점을 미루고 교환기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잡음을 내면서 중소 단말기업체들은 늘어나는 재고에 도산위기를 맞았다.
한 관계자는 “아직 콜러ID서비스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신규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제조업체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역시 신규서비스에 대한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통신이 콜러ID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전전자교환기를 확충하고 이른 시일 내에 전국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