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컴의 `정체성`

 한글과컴퓨터 어디로 가나. 지난달 말 전하진 사장이 전격 사임하면서 한컴의 앞날이 관심을 끈다.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새로운 사업전략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이 최고경영자가 바뀌면 사업과 조직이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경영목표다. 매출목표를 얼마로 잡고 어느만큼의 이익을 남기며 어떤 사업을 펼칠 것인지, 이것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한컴의 경영흐름을 보면 더할나위 없다.

 일각에선 이번 전사장의 사임을 한컴의 ‘위기’로 보기도 한다. 잘 나가던 아래아한글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려고 했던 것이 첫번째 위기였으며 지난해 11월 한컴의 최대주주가 외국계 자본으로 넘어간 게 두번째고, 이번이 세번째 닥친 위기라고 한다. 지금까지 한컴이 펼쳐온 사업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래아한글을 대표주자로 내세워 승승장구하던 한컴이 경영의 어려움을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도 그렇지만 이찬진 전임사장이 떠난 후 아래아한글 전문소프트웨어회사로서 이미지를 인터넷회사로 바꾼 것도 그리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전하진 사장이 의욕을 갖고 추진해 오던 인터넷 사업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다. 한컴 매출의 많은 부분이 아래아한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초 인터넷회사로 변신은 실패로 끝났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듯싶다.

 지금으로선 한컴의 중요한 과제는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게 한컴의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물론 기업이란 시대적 환경이나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이나 솔류션 기업으로서 변신도 꾀해야 하겠지만 한컴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을 소홀히 여겨서도 안된다고 본다.

 올 상반기까지 경영지표를 보면 한컴은 투자한 인터넷관계사들에 의해 모두 12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다. 지금의 경제환경을 감안하면 하반기에는 이보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경영실적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아한글의 경쟁력은 아직도 높다.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는 숙제이지만 경쟁력이 높은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전 사장의 사임을 계기로 한컴은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데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비 온 뒤에 땅은 굳어지기 마련이다. 당면 과제를 슬기롭게 넘기고 다시 한 번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주역으로 일어설 한컴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