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퇴색한 `반도체 빅딜`

 ‘반도체 빅딜의 의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나.’

 LG반도체를 빅딜로 인수해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가 자금압박을 이유로 일부 생산라인과 기술을 중국에 매각키로 하고 다시 대규모 협상을 진행중이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르면 6개월 안에 한두개의 생산라인 매각과 기술이전 및 인력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협상이 자칫 잘못하면 반도체 핵심기술과 인력의 유출로 이어져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오는 잘못된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6인치 웨이퍼 설계기술과 후공정 패키징 공정에 머물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하이닉스의 설비 및 기술 이전을 계기로 단숨에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작 업계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상할 만큼 느긋하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채권단과 하이닉스 경영진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사항”이라며 “회생 자금을 마련, 설비 투자가 가능하다면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D램과 같이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선 중국이 당장 우리를 따라잡기 힘들며 우리가 기술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중국이 따라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진단이 그리 타당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빅딜 당시 ‘빅딜이 아니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개별 업체의 일에 직접 개입까지 했던 산자부가 이처럼 팔짱만 끼고 있는데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핵심 반도체 업체가 경쟁국에 몸을 의탁하려 할 정도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됐는데도 산자부가 고작 내놓는 게 ‘관전평’이냐”고 말했다. 물론 다가올 통상압력을 걱정해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산자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뾰족히 내세울 만한 카드도 없다.

 하지만 항공사 지원에서 보듯 미국 정부도 자국 업체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비해 우리 정부는 발뺌만 하려 드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업계는 산자부가 빅딜 당시의 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장 하이닉스 회생 방안을 포함해 어떤 방식으로든 국내 반도체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산자부는 적어도 예전의 빅딜에 대한 ‘책임’에서 한결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산업전자부·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