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맹자와 벤처경영

 ◆김형기 KTB네트워크 상무 hgkim@ktb.co.kr

일년 중 가장 좋은 절기라고 하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건만 들리는 건 온통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들뿐이다. 지난해 초부터 보이기 시작한 미국 경제하락을 시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의 경기침체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던 차에 이번 미국 테러사태와 보복전쟁 태세는 해빙을 기다리던 늦겨울에 몰아친 매서운 삭풍 같은 느낌이다.

 더구나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기회복에 활력과 희망이 된 정보통신(IT) 및 벤처 업계는 내우외환의 어려움 속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있어 이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필자의 경우 걱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한 원인이나 극복을 위한 우리 나름의 대안을 누구도 선뜻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 2년여간 소위 벤처라 불리는 창업 광풍 속에서 덧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국내외 IT·닷컴 업체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대표적인 고전 중 하나인 ‘맹자’를 통해서 살펴보자.

 첫째, ‘유항산자 유항심, 무항산자 무항심(有恒産者 有恒心, 無恒産者 無恒心).’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고 이것이 없으면 마음이 흔들려 죄를 짓기 십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신생 업체들의 사업모델에서 지속적으로 이윤창출이 가능한 수익구조와 제대로 된 자금운용 계획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으며, 결국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기자 CEO가 영업 외에 펀딩 등 외부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급기야 전조직원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되는 경우들을 볼 수 있었다. 혹시 지금도 외부 투자환경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볼 일이다.

 둘째, 맹자가 말하길 ‘요즘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 밭은 내버려두고 남의 밭을 김매는 데 있다.’ 즉 자신만의 재능을 계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덩달아 뛰어들어 자기와는 맞지 않는 일에 정력을 소모한다는 말이다. 소위 IMF 직후 불어닥친 구조조정과 실업난 속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정부에서는 적극적인 창업지원(벤처육성)책을 펼쳤고 때마침 찾아온 전세계적인 인터넷·IT 열풍 및 코스닥 활황과 맞물려 급기야 대한민국은 아이에서 노인까지 온통 창업 열풍에 휩싸였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창업자들이 창업자 내지 기업가로서의 기본 역량과 자세를 갖추고 있었을까. 주변사람이 창업해 떼돈 버는 게 부러워서, 대기업 생활이 지겹고 어차피 퇴출당할 것 같아서, 주위의 꼬득임에 넘어가서 등. 본질과는 다른 이유로 벤처업계에 입문한 분들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제대로 성공한 벤처기업가는 돈만 벌려고 사업을 한 게 아니라 일단 자기가 좋아서 일했고, 그러다 보니 돈도 벌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맹자가 운명하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尙志(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였다고 한다. 벤처창업자건 벤처캐피털이건 돈 버는 것이 중요한 목적임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한단계 높은 ‘뜻’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돈 내고 돈 먹는 도박판과 다를 바 없다. 거창하게 ‘비전’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마음가짐을 올바로 하고 볼 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왜 이일을 시작했을까’를 생각해보고 마지막 눈감을 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멋진 친구들과 떳떳하고 보람있게 해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기 전에 먼저 그에게 반드시 시련을 주어 마음을 괴롭히는 법(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基心志)’이라고 했다. 지금은 눈앞의 위기와 고난에 낙망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차분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더욱 더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