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외국계 은행 이익 챙기기

 소시에테제너럴 등 9개 외국계 채권은행들이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빌려준 돈에 대해 채권자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외국 은행들의 행보에는 곱지 않은 시각들이 많다.

 당초 외국 은행들은 하이닉스(현대전자 시절)에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을 제공하면서 현대그룹이 대주주로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에는 현대그룹이 든든한 배경이 됐으나 여러 사정으로 하이닉스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지난 6월 계열분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외국 은행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이를 수긍하는 듯했다. 하지만 하이닉스의 유동성 문제가 재차 불거지자 지난 8월 뒤늦게 중도상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외국 은행들은 특히 75% 이상의 채권자가 동의할 경우 나머지 채권자도 별도의 액션을 취할 수 없다는 구조조정촉진법이 적용되기 이전(9월 14일)에 국내 지점의 채무를 해외 본사로 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 지점이 보유한 채권은 국내법 적용 대상이지만 본점 보유 채무는 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들도 하이닉스와 관련, 회사살리기에 노력하는 국내 시장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며 “외국계 은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영업하며 이익을 획득한 은행들이 편협한 채무이관에다 디폴트 선언까지 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분개했다.

 이 관계자의 얘기에는 다분히 국민적 정서가 반영돼 있다.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기업들은 은행에 대해 ‘채무자’기도 하지만 영업에 필요한 ‘고객’의 위치에도 서 있다. 고객의 사정이 어렵고 상황이 일부 바뀌었다고 해서 만기가 도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객의 주머니를 뒤지는 일은 이해하기 힘들다.

 웬만한 사람들은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 기업의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이익만을 취하기보다는 현지인들과 같이 성장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외국계 은행들의 디폴트 선언은 이런 단순한 경영원리마저 무시한 매우 이례적인 행태다. 외국계 은행이 국내에 지점을 세울 때마다 자주 쓰는 문구가 있다. ‘○○의 선진 금융을 대한민국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번에 외국 은행이 하이닉스에 가한 메스가 진정한 선진 금융기법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증권금융부·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