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탁 BnC글로벌 회장
“초고속 인터넷 사용의 선도국가” “내가 예측한 IT산업의 발전효과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될 것이다” “한국의 광대역 통신망 수준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나는 미국에서 항상 강조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2001 세계지식포럼’의 특별강연에서 토해낸 한국 정보통신 수준에 대한 말들이다. 그뿐인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래 디지털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가정사업의 첫번째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선택했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IT벤처산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세계의 첨단 전자제품을 리드하는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앞다퉈 한국의 IT 벤처업계를 방문하고 있다는 보도 등을 접하면 한국 IT산업의 위상이 어디쯤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시장경제가 시작된 이래 그 시대를 주도하는 중심산업이 있었고, 중심산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세계경제를 지배해 왔다. 뒤늦게 산업사회를 받아들여 ‘한강의 기적’이란 신화를 만들면서 ‘세계일류’를 부르짖어 왔지만, 지금과 같이 세계경제의 핵심 중심산업에서 세계 일등 수준의 역량을 가져보기는 우리가 시장경제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 아닌가. 불과 2, 3년 전 IMF를 맞는 경제수난을 겪은 우리로서는 ‘한강의 기적’ 이상의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 기회를 꼭 살려 지식경제시대 세계 리드의 위치를 선점하는 전략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전략이 중심이 되어야 하나. 글로벌 마케팅이다.
기술적으로 세계적 수준의 제품도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이나 비전 없이는 시장에서 실패하는 예가 대부분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사업에서 첫째로 꼽는 기본은 마케팅이다. 마케팅 아이디어와 그에 따른 사업계획이 분명할 때 자금이 투자되고 자금이 모이면 기술도, 사람도, 정보도 모두 모을 수 있다는 것이 벤처사업의 기본개념이다. 흔히들 세계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수준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훌륭한 기술은 훌륭한 마케팅에서 잉태된다고 믿는다. 글로벌 수준의 기술은 글로벌 수준의 마케팅이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경제체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글로벌마켓시대에 가장 발전된 기술개발전략은 마케팅과 연동된 기술개발모델일 것이다. 비근한 예로, 미국 퀄컴사의 CDMA 상용화 기술개발전략을 살펴보자. 이론기술을 상용화하면서 마케팅을 연동시킨 것이다.
당시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GSM기술시장의 아성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텅 비어 있는, 하지만 기술 및 시장 잠재력이 있는, 시험하기에는 아주 적정 규모인 자그마한 동양시장, 바로 한국시장을 택했던 것이다. 퀄컴사의 초기 전략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성공적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가 필자에게 요청한 컨설팅 프로젝트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 IT벤처의 신화를 창조한 초기주역 중 한 노련한 벤처사업가가 이끄는 벤처캐피털로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개발 회사에 투자·보육중인데, 철저하게 글로벌 마케팅 개념을 접목하고 있다.
주된 시장을 가진 나라를 선정해 나라마다 특성에 맞게 지역마케팅전략을 연동시키는 기술개발모델인 것이다. 마케팅 연동 비중이 훨씬 높아진 모델이다. 일전에 국가기술개발사업을 수행하는 대표적 기관의 미래선도기술 개발계획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직도 기술개발 자체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는 전통적(?)인 우리의 기술정책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빛의 속도로 경쟁하는 지식경제시대에 마케팅 연동 기술개발 전략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 아니겠는가. 우선, 지금 우리가 이룩한 세계적 수준의 IT역량을 세계시장에서 제대로 꽃피울 수 있게 실효성있는 글로벌 마케팅 진입 전략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정부차원의 과감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 가 한다. 정부는 지원 위주로, 특히 글로벌 마케팅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전문인력 양성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가능한 시장경제원리에 최대한 맡겨야 할 것이다. 성급한 실적위주의 정책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