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범아시아 위성 공영채널

◆김정기 방송위원장 kjk01@kbc.go.kr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10년 동안 아시아 인구가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할 것이며,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기타 지역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일본·중국·홍콩 등 한반도에서 가까운 극동아시아 지역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산업국가들로 영상산업 분야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잠재력이 큰 영상시장으로서 세계적인 매체 재벌들의 투자 관심 지역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영상 제작물 수출이 활성화되고 있다. 수출 장르로는 드라마와 만화영화가 두드러지며, 다큐멘터리 장르도 향후에 주목해야 할 분야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드라마가 아시아권 국가들을 상대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류 열풍을 타고 중국인 등 동아시아인 사이에 한국을 알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면서 이러한 한국의 드라마들은 그들 사이에서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정서적으로 유사한 유교문화권 국가의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삼고 있어 동아시아 국가의 안방 진출을 더욱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이 계제에 필자는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3국이 ‘범아시아 위성 공영채널’을 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러한 공영 위성방송은 분명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공통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자국의 수출시장 확대는 물론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텔레비전의 역할에서 그 명분을 찾을 수 있고, 아시아 공영방송 사업자들이 위성방송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의해 직면하게 될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실질적인 탈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을 실험 무대로 해 공영 위성방송은 실행에 옮겨진 사례가 있다. 범유럽 위성 공영방송은 1982년에서 1992년까지 4개의 채널을 운영했는데 유리콘(Eurikon)·유로파(Europa)·유로뉴스(Euronews)·유로스포츠(Eurosport)가 그것이다. 이들의 출현 배경은 그들이 직면했던 변화하는 방송환경에 유럽 공영방송 사업자들이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었다. 유럽 영상시장으로 밀려드는 미국의 방송 수입물에 대해 강한 위협을 느낀 데다 확대되고 있던 상업방송에 대응하기 위한 공영방송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에서 공영방송의 독점체제가 허물어지면서 기존 공영방송사들이 새로운 제도적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자 공통의 유럽문화와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프로그램 소비를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유럽통합론자들은 생각했지만 이들의 실험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실패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질적인 문화를 두루 포함하고 있는 유럽 권역과 유교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권역은 그 차이가 두드러짐을 놓칠 수 없다. 유럽은 시청자들의 문화적 취향이나 이해가 너무 달라 유럽적인 문화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범유럽 서비스라고 표방했으나 유럽 시청자들의 핵심 정서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유리콘이나 유로파와 같은 공영방송 채널은 물론, 스카이 채널이나 슈퍼 채널과 같은 상업 위성방송 채널조차 상업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한 충분한 시청자 확보가 어려웠던 것도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범아시아 위성 공영채널은 크게 보면 이슬람문화권과 기독문화권과의 ‘문명충돌’ 완충역으로서 아시아적 중용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와 시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범아시아 위성 공영채널을 유교권역에 국한하더라도 일본과 중국에 총 270여만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약 130만명의 관광객이 이 지역을 방문한다. 특히 중국의 경우 현지 거주자가 200만명이며 관광객이 연간 25만명이고, 일본의 경우 현지 거주자가 70만명이며 관광객이 연간 100만명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소한의 시장 확보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범아시아 위성 공영채널은 중국과 일본 등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사회를 위성방송망으로 하나로 묶음으로써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제고하고 교포사회의 정신적 통합을 도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