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벤처포트 대표이사 stevehan@ventureport.co.kr
한국 벤처기업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기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금난을 얘기하고 있지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 제품의 혁신, 그리고 이를 성취하도록 만드는 리더십의 부재라고 본다.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포함한 기존 기업과 다른 점은 바로 혁신이다. 그러나 한국의 벤처기업은 재벌기업보다 혁신적이지 못한 것 같다.
일례로 IT 분야 대기업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프론티어에 해당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바로 ‘차기 거대산업·제품(next big thing)’을 목표로 엄청난 인력과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여기에서 선도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벤처기업이고 이것이 바로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 벤처기업의 성공 사례들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벤처기업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약간의 개선, 미미한 원가 절감, 크지도 않는 특수마켓 지향, 아이디어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은커녕 대기업과의 협력모델을 만들기도 힘들다. 물론 시장과 고객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혁신적 제품은 소위 블리딩 에지(bleeding edge)가 되어 사라지게 된다. 애플의 뉴톤 PDA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례도 거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벤처의 규모와 목표하는 시장의 규모다. 우리의 경우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업체가 비효율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또한 차별적 우위와 혁신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비슷한 품질과 서비스 수준을 갖고 있다면 고객은 가장 저가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0억달러의 투자자산을 운영하는 패트리코프 벤처스의 패트리코프 회장은 최근 뉴욕에서 열린 뉴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너무 많은 창업을 문제삼았다. 미국에도 벤처를 운영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풍부한 자금 덕분에 세운 경쟁력 없는 기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에 몸담고 있는 회사에 머물면서 그 회사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함에도 이를 망각하고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우리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고 본다. 정부정책이 아직도 양적 목표 중심인 것이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경쟁력 없는 벤처가 몇 만개 만들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러한 기업들에 몇 조의 돈이 투입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의 내용 또한 아무런 부가가치를 쥐고 있지 못한 자금일 뿐이다.
100개 이상의 기업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이스라엘이 결코 수많은 벤처양산 정책에서 이뤄졌다고 보지 않으며 수십억달러의 투자금이 단지 정부나 유대계에서만 지원된 것은 아니다. 혁신적 기술·제품과 선진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할 때만 뛰어난 회사(great company)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좋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혼동하고 있다. 안정적 매출, 약간의 이익 그리고 작은 성장률을 갖는 기업은 좋은 중소기업일 수는 있느나 훌륭한 벤처기업은 아니다. 물론 이런 중소기업도 투자대상일 수 있으며 투자자에게 좋은 투자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정책과 벤처를 지원하는 정부정책, 투자회사의 투자전략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 파트너는 뛰어난 회사의 5가지 요소로 △탁월한 기술 △경험있는 경영진 △대규모이며 급속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에 대한 전략적 집중 △적정한 파이낸싱 △절박감을 꼽고 있다. 한국의 벤처기업이 이러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최근의 경기침체와 벤처 환경의 악화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벤처캐피털에 좋은 투자처를 찾는 것보다 뛰어난 회사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임을 일깨워준 것은 우리의 짧은 벤처투자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벤처기업인과 정책수립자인 것 같다.
투자자들은 더욱 똑똑해지고 보수적이 되고 있다. 스마트 머니는 점점 더 구하기 힘들 것이다. ‘Innovation or Die’가 한국 벤처의 새로운 구호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