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가 없다.’
지난 12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추계 컴덱스를 둘러본 참관객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실제로 이번 컴덱스에서는 테마가 될 만한 신기술이 없었을 뿐더러 딱히 주목할 만한 제품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79년 컴덱스가 개막한 이래 올해 만큼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진행된 컴덱스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참관객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추계 컴덱스는 IT산업이 세계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한 90년 중반 이후 매년 새로운 기술의 진열장이자 예비스타기업들의 데뷔무대였다. 일례로 94년 추계 컴덱스의 이슈는 차세대 운용체계 싸움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와 IBM의 ‘OS2워프’가 동시에 선보여 힘겨루기를 벌였다. 결국 승리는 윈도의 몫이었다. 95년 컴덱스에서는 CPU 칩 대결이 화제였다. IBM·모토로라·애플 연합 진영이 파워PC 칩을 개발해 인텔의 펜티엄 칩에 도전장을 냈다.
전세계에 불어닥친 인터넷 열풍 속에 열린 96년 컴덱스에서는 넷스케이프와 MS가 각각 ‘내비게이터’과 ‘익스플로러’를 앞세워 브라우저 전쟁을 치렀다. 97년에는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 디지털 정보 저장 매체가 단연 압권이었다. 98년과 99년에는 소프트웨어 분야를 중심으로 전자상거래 솔루션이 많이 출품됐으며 MS와 리눅스 진영의 한 판 힘겨루기가 볼 만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블루투스와 PDA·포켓PC 등 포스트PC를 대비한 제품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IT경기가 한풀 꺾이고 미국 테러사건이라는 악재 속에 진행된 이번 컴덱스에서는 뚜렷한 이슈를 찾기가 힘들었다. 이는 IT 시장에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으며 내년 경기 역시 그리 밝지 못함을 뜻한다. 불투명한 경기 전망 속에서 주요 IT기업의 ‘동면’ 상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을 이기는 해법은 간단하다. 겨울이 끝나는 때를 기약하면서 봄을 맞을 채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다. 경기 불황의 저점을 돌파하면서 다시 회복되는 시점을 대비해 지금은 내부 정비와 기술 개발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호황기를 위해 경쟁력을 높이고 기술력을 쌓는 것이 결국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별 이슈가 없는 가운데도 이번 추계 컴덱스는 우리에게 이같은 교훈만은 확실히 심어 주었다.
<라스베이거스=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