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에게는 ‘전(錢)’이란 한 글자만 중요하다. 다른 것은 일절 개의치 않는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내맘대로 부릴 수 있다.”
중국 청나라때 소설 ‘기로등(岐路燈)’에서 상인 만상공(滿相公)은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 소년들에게 ‘상인의 덕목’이라며 이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일견 섬뜩하리만치 중국인들의 상술과 장사에 대한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1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제 중국시장을 옥죄고 있던 규제와 간섭이 모두 사라져 중국에 진출만하면 당장 큰 돈을 벌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이곳 중국 주재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이같은 반응에 우려를 나타낸다. 문은 열되 문턱은 높이는 중국인 특유의 양면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은 WTO 가입 이후에도 주요 제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관세정책을 고수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소매업의 외국인투자비율을 49%로 제한, 앞으로는 외국계 합영사의 경영권에도 자국인이 직접 관여하겠다는 심사다.
중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회사가 납부한 세금은 2320억위안(약 36조원). 중국 전체 세수의 18.3%에 해당한다. 9월 현재 중국에 투자된 외국계 자금의 규모도 무려 7260억달러에 이른다.
이중 상당부분은 아마 우리 업체들의 피와 땀일 것이다. 정부의 통계발표와는 달리 실질적 대중(對中) 무역수지는 이미 적자다. 우리 상품의 수출을 주도해야 할 중국 주재 한국 종합상사들마저 중국수출의 첨병으로 전락했다. 중국산 제품을 현지서 발굴, 한국 등 해외에 내다파는 게 이들의 주업무가 된 지 오래다.
국내 TV 드라마로도 방영중인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商道)’가 이곳 상하이에서도 인기다. 상인이 천대받던 조선 순조시절, 정3품의 관직까지 오르며 청나라 상인들을 호령했던 거상(巨商) 임상옥. 우리 시대 제2의 임상옥을 기다려 본다.
<상하이=디지털경제부·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