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과기교류` 제언

◆지경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네트워크경제연구팀 책임연구원

kyjee@etri.re.kr

 

 지식사회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정보기술(IT) 등 과학기술은 미래사회의 변혁을 주도하는 핵심요소로서 국부 창출과 삶의 질 향상 등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에 편승해 북한의 과학기술정책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예컨대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도로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내세워 이를 새로운 경제발전의 역점적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난 1월 방중 이후에는 “20세기가 기계산업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정보산업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요컨대 북한이 기치를 내건 과학기술 중시정책의 요체는 정보화와 IT육성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IT에 대한 북한당국의 관심은 최근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인력의 양성과 IT 분야의 대외협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난과 IT인프라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북한의 기술수준은 극히 낙후되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은 국방기술 분야와 연계돼 국제적으로도 많은 인정을 받고는 있지만 시장성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추구하는 IT산업 발전을 통하여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과의 기술교류협력 및 이들 국가로부터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다.

 물론 북한사회의 폐쇄적인 정치·사회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기 전까지 단기적으로는 선진국과의 기술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실현과 북측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북측의 입장에서) 남북한간 기술협력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일 것이다. 특히 기술협력 교류는 비정치적 측면이 강해 타분야의 교류협력에 우선하여 추진할 수 있는 분야로서 남북 상호간 신뢰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초석사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남북간 기술협력 교류는 용어관련 표준화 작업을 위한 사전협의가 일부 진척된 것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성과가 전무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남북간 교류협력은 정부와 기업이 정치적·경제적 실리만을 강조한 나머지 단기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경제협력 분야에 대한 재원과 정책적 지원이 집중돼 왔다. 가시적인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과학기술교류협력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적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에 진출한 기업들의 경우 IT용어 및 시스템에 상이한 부분이 많아 사업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경제협력의 활성화와 장기적으로는 남북간 산업간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더욱 균형잡힌 남북교류협력 추진을 위하여 남북간 기술표준 및 시스템 표준화 등 분야에서의 기술협력교류 활성화를 향한 양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통독과정에서 동서독간의 정보통신 인프라의 통합을 위해서 서독은 90년부터 97년까지 동독지역의 통신분야 현대화에만 무려 600억마르크(32조원)를 투자했다. 따라서 IT교류협력은 통일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통일 준비적 사업으로 유효하다고 보며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셋째, 그러나 교류협력 사업의 수익구조 악화시 경협 전반은 물론 대북IT 사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IT교류사업이 아무리 민족 공동의 발전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민간이 사업적 측면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목적을 담보할 수 있는 수익모델을 창출함으로써 교류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실패가 오히려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해 통일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