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시장단일화와 R&D투자

 ◆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

 

 지구촌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제정치질서를 뒤바꾸게 될 아프가니스탄 테러전쟁을 필두로 21세기 새로운 무역질서를 모색하게 되는 뉴라운드 출범, 그리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메가톤급 폭풍이다.

 특히 중국의 WTO 가입과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키워드로 하는 뉴라운드는 지구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동안 선진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반덤핑 남발을 막을 수 있어 전자·철강·조선 관련 수출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농산물·수산물·서비스 분야는 엄청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경이 없어지고 시장이 단일화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많이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현실은 암울할 정도다. 세계 1등품이 55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924개, 중국 460개, 일본 326개, 대만 122개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끝없이 추락하던 우리의 연구개발(R&D)투자가 지난 97년 수준으로 회복되는 등 확대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에 만족하면서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는 차세대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환경·생명공학업과 의료·정밀기기제조업의 연구개발투자가 각각 80.6%와 73.9%가 늘어나고 특히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IT·BT·ET 관련 연구개발금액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실제로 과학기술부가 최근 발표한 ‘2001 과학기술 연구활동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연구개발비는 정부 연구개발예산 4조4276억원, 민간 11조3740억원, 해외투자 100억원 등 총 15조811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 정도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전인 97년(12조1858억원)보다 3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금액 비율(2.68%)도 지난 97년(2.69%)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규모가 이처럼 크게 늘어난 것은 기업들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7.1%) 이상으로 투자규모를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반증하듯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16조6000억원) 대비 연구개발비는 6.6%(1조1560억원)로 지난해(5.9%)보다 0.7% 확대되고 LG전자는 지난해 2.5%에서 3.7%(3234억원)로 늘어났다. 또 삼성전기는 지난해 상반기(512억원)보다 17.3% 늘어난 601억원을, SK텔레콤은 지난해 상반기(562억원)보다 늘어난 570억원을, 삼성SDI는 상반기 매출액의 5.2%인 982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했다.

 세계경기와 무관하게 기업간·국가간 R&D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R&D 투자가 늘어나고 있으나 우리의 전체 R&D 예산은 선진국의 10분의 1 내지 16분의 1에 불과하다. 일례로 가전 3사의 연구개발비 총액이 일본 소니사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다. 또한 정부 대 민간의 R&D 투자비율(98년 기준=24.6대 76.4)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32대 68)에 못미친다.

 물론 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내년도 재정운영의 중점 목표를 경제활성화 및 미래 대비 투자로 세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본다.

특히 과학기술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연구개발투자비를 6000억원 정도 늘리고 생명공학기술(BT)·나노기술(NT)·정보기술(IT)·환경기술(ET) 등 차세대 성장기반산업 투자규모를 올해 9642억원에서 내년에는 1조2042억원으로 대폭 증액한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부품·소재기업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70%, 경쟁력은 85%에 불과하다. 또 우리가 자랑하는 IT 분야의 경쟁력도 표준화·국제생산네트워크·부품조달체제에서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