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호 전자부품연구원장 chkim@keti.re.kr
중국이 몰려온다. 새해에도 세계를 향한 중국의 질주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WTO가입으로 빗장을 풀었고 올림픽 개최와 월드컵 진출로 축포를 터뜨린 터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중국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아시아 경제를 집어삼킬 것이다. 부품산업의 경쟁력이 약한 한국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굳이 오마에 겐이치의 경고가 없더라도 중국의 전자산업은 이미 위협적이다.
중국은 2000년 이미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전자산업 생산국이 됐다.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전자산업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PC부품, 가전제품 등은 세계 최대시장이다. 이미 한국을 성큼 앞섰다. 정보기기, 가전기기, 전자부품, 통신기기 순으로 균형적인 구성을 이룬 중국의 전자산업은 전세계적 IT불황을 겪은 지난해에도 성장을 거듭했다.
중국의 성장은 탄탄한 내수시장, 대규모 투자유치,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의지 등이 밑거름이 됐다. 내수시장은 불황기에도 완충작용을 하는 엔진역할을 했고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규모 첨단 외국기업 진출이 시장을 키웠다. 일본, 한국과 달리 98년 이후 국내총생산(GDP)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을 점차 늘려 장기적인 IT산업 발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특히 약점으로 꼽히는 전자부품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0.25미크론 이상의 집적회로, HDTV와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의 핵심부품, 마이크로 전자재료, 부품소재, 박막기술 응용산업 등을 10차 5개년 계획의 12개 프로젝트를 20개 전략적 중점분야에 포함시켜 적극 육성중이다. 이는 연평균 8%에 이르는 고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기린아 중국의 고성장은 국내 전자산업에 큰 위협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국내 부품산업의 중국 수출은 지난해 반도체 침체 때문에 소폭 둔화됐지만 상반기까지 1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7년째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대만, 미국에 이어 수출액 4위를 기록하는 등 중국은 국내 전자산업의 큰 시장이다. 중국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점유율 1위 품목을 337개 가지고 있어 일본, 미국, 대만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품목이 반도체, 음극선관, 브라운관 등 특정품목에 편중돼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세계 시장 경쟁력이 1위임에도 중국시장에서는 4위에 그친다.
국내 부품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 직면했다. 중국의 경쟁력이 점차 하이테크 제품으로 올라서면서 위협은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부품산업은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은 다국적 기업과도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반면 기회도 있다. 중국의 WTO가입은 국내 산업에 핵심부품 공급 기회의 확대라는 훈풍을 불어넣을 것이다. 외국인 투자법을 개정해 원료, 부품의 중국내 구매 규정이 삭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 인하도 국내 부품업체에는 호재다. 중국,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 전자산업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주목된다. 전체 전자산업의 27.6%를 점유한 동북아 3국의 시장 지배력으로 주요 이슈 및 정책을 주도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힘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최상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본 체력부터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 중국을 최대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2002년도 여전히 전자산업이 한국호를 이끌어 간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호의 2002년 이후 항해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화두는 중국이다. 4세대 이동통신, 텔레매틱스, 멤스 등 신규 첨단 산업 육성과 조기 투자, 주요 수출 품목별 생산전문업체(EMS) 육성, 통합 애프터 서비스 센터 구축을 통한 해외 현지 서비스 강화, 마케팅·표준화·브랜드 전략 강화 등 발빠르고 과감한 대응책 마련의 성공여부에 따라 중국은 위협이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