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일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당시 문화산업지원센터)은 한국문화 상품의 일본 진출을 돕기 위해 일본 도쿄에 현지사무소를 개소했다.
당시 영화, 온라인게임 등 문화상품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정부도 자연스레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현지사무소는 ‘2003년 한국의 문화콘텐츠 수출 20억달러 달성에 기여하고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 구축’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실제로 당시만 해도 문화산업 분야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벤처기업들의 일본 진출이 붐을 이뤘으며 금방이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것으로 여겨졌다.
◇진출 성적표=한국내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일본 현지 반응은 예상 외로 냉담하다. 가장 주목을 끌었던 온라인 게임분야의 경우,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GV의 ‘포트리스’ 등이 베타서비스에 들어가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실제 수익이 요원하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 패키지 게임의 경우 소프트맥스가 일찌감치 ‘창세기전1(96년)’ ‘서풍의 광시곡(99년)’ 등을 내놓았지만 일본 시장에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출판만화로는 대명종출판사가 일본 현지법인인 타이거북스를 통해 한국 출판만화 8종을 일본어판으로 제작, 일본내 판매에 들어갔지만 ‘누들누드’와 ‘기생이야기’가 그나마 주목을 받았을 뿐 나머지 6종은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한국 캐릭터를 대표했던 엽기토끼 ‘마시마로’도 일본에 진출했지만 한국에서만큼의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한국문화 상품 가운데 성공적으로 일본 진출을 마무리지은 것은 영화 분야다. ‘JSA’ ‘리베라메’ ‘반칙왕’ 등 한국영화가 잇따라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며 대략 740만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현지 관계자들은 한국문화 상품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로 현지화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진 문화 상품을 그저 일본어로 번역해 시장에 내놓는 안일한 태도로는 시장 진출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일본 현지사무소 박송희 소장은 “마시마로가 곰 앞에서 이마로 병을 깨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설정과 내용이 일본인들에게 똑같이 재미있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며 콘텐츠 재가공을 통한 일본 현지화를 강조한다.
또한 한국 벤처기업의 경우 일본내 유통사와 합작을 통한 진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자신이 소유한 콘텐츠의 일본내 유통만을 담당하는 일본측 회사와 수익을 나누는데 대한 거부감이 아직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한국 벤처들은 일본 기업과의 합작법인을 통한 진출보다 단독이나 단순 제휴를 통한 진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박 소장은 “일본의 유통 시장은 한국보다 훨씬 복잡해 외국인인 한국인이 개척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며 “시장에서 함께 고생하며 콘텐츠를 판매해 줄 ‘한 솥밥’ 먹을 일본측 파트너를 찾는 일이 일본 진출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한다.
◇향후 전망=앞으로도 빅필름의 ‘엘리시움’, 양철북의 ‘원더플데이즈’ 등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게임, 출판만화, 캐릭터 등 한국문화 상품의 일본 공략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시장인 일본을 그대로 놔두고 문화상품의 해외 시장 진출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의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일본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올해가 문화상품의 일본 진출에 최적기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문화상품 일본 진출 붐을 타고 설립된 일본 현지사무소도 바쁘게 움직일 예정이다. 오는 2월에 도쿄도가 주최하는 ‘도쿄 국제 아니메페어 21’, 봄·가을에 있을 도쿄TV 주최의 ‘더 디지콘3(The Digicon 3)’ 등 각종 견본시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지원하는 한편, 일본 시장 분야별 동향 조사를 실시해 한국 기업에 정보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성호철 통신원=도쿄 sunghoch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