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today.com=본지특약】 닷커머들은 첨단기술분야의 슬럼프와 경기침체로 일확천금과 조기은퇴의 꿈을 박탈당했지만 이처럼 희망없어 보이는 상황속에서 의외의 ‘소득’을 올린 캘리포니아인들도 적지 않다.
닷컴붕괴와 경기침체가 실리콘밸리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닷컴의 금맥을 찾아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든 현대판 ‘골드러시’는 영구히 호황을 구가할 것 같던 ‘인터넷경제’가 요란스런 파열음을 내며 멈춰서자 일대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부 닷커머들은 장기호황속에서 부풀대로 부푼 지출을 줄이느라 허리띠를 졸라맸고, 밥그릇을 빼앗긴 실직자들은 무너진 ‘금광’을 등뒤로 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이야기는 그렇듯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진동이 잦아들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조금씩 정리되자 기다렸다는 듯 경기침체에 묻어온 조그만 축복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에 남은 이들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삶의 질이 개선됐다고 입을 모은다.
신생 닷컴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쭉쭉 뻗어 나가다 나이 40세에 실직자로 추락한 켄 벨랜저는 이 경기침체가 ‘저주로 변장한 축복’이었다고 꼽는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로 인터넷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그는 인터넷 로고 및 상표추적 업체 이미지록(imagelock.com)의 좌초로 밥줄이 끊겼지만 ‘도락’을 ‘생업’으로 연결시켜 멋들어지게 재기했다.
게임광인 그는 최근 자신이 직접 촬영한 비디오게임 ‘PC187:1급 살인’을 시장에 내놨다. 그는 “예전에 비해 수입이 줄어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 오히려 기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전형전인 라이프스타일은 긴 업무시간과 통근시간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경기침체 이후 교통체증은 두드러지게 가셨다. 택시 대절과 아파트 찾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일자리를 보존한 이들의 경우 사전 승인된 낮은 저당주택대부 이자율을 적용받아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루커스필름(lucasfilm.com)의 마케팅 매니저 크리스티나 로리시(29)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기가 수월해졌다”고 즐거워했다.
이 곳에는 임대아파트가 남아돌기 시작했고 주차공간도 전에 비해 늘어났으며 식당에 좌석을 예약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게다가 긴축생활이 자리잡아감에 따라 쇼핑장소의 인파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갓 결혼한 스티븐 피닉스와 메그 라 보드는 카리브해 유람선편으로 호화 신혼여행을 마친 뒤 9·11 미 테러 발생 하루 전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주후 피닉스의 근무처인 기술 중심 홍보업체가 문을 닫았고 피닉스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해직통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그의 예전 고객들이 연락을 취해왔다. 그는 이들 가운데 알짜배기 3개사를 골라낸 뒤 피닉스PR(phenixpr.com)를 설립, 아내와 함께 집에서 신바람나게 일하고 있다.
전직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이자 이용사인 마이크 블레이록(31)은 “불황기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적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70년대 불황기에 문을 열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애플(apple.com)을 단적인 예로 꼽았다.
그는 직장을 잃은 뒤 온라인예약, 재고관리 등을 처리하는 레드오퍼스(redopus.com)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장비와 용역에 대한 수요감소로 예전 같으면 수백만달러를 가져야 도전이 가능했던 프로젝트를 저가에 해치울 수 있다”며 “위기란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역설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황은 양날의 칼이다.
어도비시스템스(adobe.com)의 브루스 치즌 최고경영자(CEO)는 불경기의 여파로 사업성공의 측량치가 훨씬 합리적이 됐다고 말했다.
치즌 CEO는 불황 때문에 실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며 임금과 이자율이 현격히 하락했기 때문에 새너제이에 있는 어도비의 사옥확장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동시장이 둔화돼 유능한 인력을 마음껏 골라 쓸 수 있다는 점도 기업이 누릴 수 있는 ‘불황속의 축복’이다.
치즌은 “닷컴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 면접시험에 응한 사회 초년병들이 곧바로 어도비의 부사장쯤은 돼야 마땅하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는 꼬락서니에 솟구치는 화를 참느라 애를 먹은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브라이언리기자 brianlee@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