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 달리 9·11 테러는 세계 PC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와 그 뒤를 이은 보복공격은 PC 수요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PC시장의 수요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업계에 일깨워 주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는 2005년까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이 테러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국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보이면서 연평균 15∼20%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은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비해 낮은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올해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을 미리 들여다본다.
세계 PC시장은 테러 이전에도 보급 증가를 비롯해 기술적인 측면에서 시장활성화 요인 부재, 경기침체 등으로 부진이 예상돼 왔다. 여기에다 테러 이후 경기침체 인식 확산, 민간·공공 및 기업시장 전체에 걸친 소비심리의 위축 등이 또 다른 부진 요인으로 더해졌다. 이 요인들은 전세계 경제행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올해 PC시장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PC의 보급률이 높고 경제 상황에 민감한 미국 PC시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테러사건의 2차 영향권인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은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PC시장 전망=전통적으로 세계 PC시장 수요는 기술적인 요인보다 경기 등의 환경요인에 더 민감했다. 9·11 테러는 일반 소비자와 기업시장에서 구매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경기침체를 유발, PC시장 수요회복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9·11 테러는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구매력을 감소시켜 PC시장 성장이 당초 예측보다 6개월∼1년 미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PC 신규수요 창출은 상당히 늦춰질 공산이 크다. 물론 이에 따라 업그레이드나 교체수요도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반에 선보인 윈도XP 역시 가격인하와 마찬가지로 수요창출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불황 여파로 IT 투자 자체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IT지출이 더 이상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일본 제외) PC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유럽의 경우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5.8% 감소했지만 올해에는 상대적인 경제안정과 교체수요를 기반으로 9.7%의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는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지난해 7.0%, 올해 12.4%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제품별로는 지난해 4.3%에 이어 올해에도 5.1% 시장성장이 예상되는 노트북이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한 데스크톱 대체 수요와 일부 개도국 시장에서 신규 수요로 PC시장 전체의 매출액을 끌어올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침체로 인한 구매력 감소 여파로 주춤거리고 있지만 교체수요가 올 하반기와 내년 시장성장을 주도할 주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세계 PC시장 출하대수는 지난해 대비 2.1% 신장한 1억2600만대에 달한다. 또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기에 들어서는 2003년에는 11.7% 늘어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 오는 2005년까지 연평균 11%씩 성장, 1억7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AP지역(일본 제외)=전통적인 비수기인 7, 8월을 거치면서 하락세를 보였던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은 9월 들어 대만에 불어닥친 태풍과 주요 국가 기업들의 부도로 3분기 내내 깊은 불황에서 허덕여야 했다.
4분기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은 9·11 테러보다 해당 국가의 내부요인에 의해 좌우됐다. 미국·유럽의 경기침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데 홍콩·싱가포르·대만과 같이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주요 수출대상국의 구매력 감소로 직접 영향권 아래 놓였다.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과 유럽의 경기회복으로 수출증가를 예상했던 아시아 각국은 올해 수출부진으로 인한 GDP의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PC시장은 지난 98년과 같은 극심한 불황으로 접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시장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성공적인 정권교체와 안정된 환율을 바탕으로 경제여건을 개선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PC가격은 지난해 3분기 과도하게 쌓인 재고로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시장에서 판매부진으로 인해 발생한 재고가 상대적으로 보급이 낮아 수요기반이 안정된 이 지역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다. 이 역시 가격인하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지속적인 가격인하는 수요창출 효과도 있지만 시장전반에 걸쳐 가격질서를 혼란시키면서 PC 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올해 아시아·태평양 시장은 전반적으로 호조를 띠겠지만 인도시장의 경우 미국에 대한 높은 기술산업 의존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침체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IT분야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있어 PC시장 성장이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태평양 PC시장 수요는 올 중반 이후 회복세를 보이면서 고도성장을 재개, 오는 2005년까지 연평균 21%의 성장이 예상된다. 그 결과, 2005년에는 전체 보급대수가 전세계 PC시장의 24%에 이르는 4200만대에 달하게 된다.
한편 한국시장은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어 설비투자 증가가 예상되는 올 하반기부터는 시장수요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2005년까지 연평균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005년 한국의 PC판매수량은 600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특히 노트북 시장이 제품의 가격경쟁력, 성능 및 기능 향상, 모바일 인프라의 구축을 바탕으로 연평균 50%에 가까운 고속성장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데스크톱은 수요포화와 노트북의 교체수요 잠식으로 연평균 10% 성장에 그치고 특히 오는 2005년부터는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SIAS(Standard Intel Architecture Server, PC Server)는 인터넷의 보급 확산과 이에 따른 수요의 증가로 연평균 33%의 고속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일본 PC시장은 지난해 3분기 가계부문의 구매력 감소와 경기침체의 심화로 하락세가 눈에 띠었다. 하락세는 특히 가정용 데스크톱과 노트북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이는 일본시장의 보수적인 구매행태와 지속적인 경제불황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PC수요 감소는 미국과 아시아 지역의 경기지표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일본 PC시장은 지난해 5.8% 역성장에 이어 올해에도 12% 이상의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소 배경에는 경기요인 이외에도 일본 PC업체들의 전략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현재의 수요부진에서 비롯된 높은 재고수준과 업체들의 수익성 중심 시장전략 변화는 일본시장에서 PC 출하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4분기는 윈도XP 출시와 연말 판매증가로 인해 PC시장에 일시적인 호조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윈도XP 이외에는 시장촉진 요인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윈도XP 역시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제로서 역할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 PC시장은 9·11 테러사건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일본 역시 테러사건이 단기적인 소비심리 위축, IT 지출과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켜 PC시장의 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본시장에서 PC판매는 지난 2000년 1400만대에서 올해에는 1200만대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2005년까지 연평균 8% 성장에 머물러 2005년 판매대수는 1500만대 미만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2000년 대비 5% 신장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연평균 성장률이 1%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