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경기회복설’과 ‘시기상조론’이 용호상박이다.
전자는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종합주가지수도 1년 동안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는 점을 꼽는다. 소비심리 회복도 빼놓지 않는다. 해가 바뀌면서 실시한 백화점 할인판매 행사에는 지갑을 아낌없이 여는 사람들로 붐비고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되던 아파트 가격 오름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 그 근거다.
후자는 수출 둔화와 투자 위축으로 반격을 가한다. 수출 대표주자인 전자산업을 포함해 대부분 산업의 수출이 아직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경쟁상대인 일본의 엔저로 인해 우리 상품의 수출 채산성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제기한다. 또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일반 기업부문의 투자가 위축돼 있고 공공부문 투자와 일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도 경기부양으로 이어지기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97년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웠다는 지난해를 보낸 우리로서는 경기회복을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진실은 어찌됐던 ‘경기회복설’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세계 경기에도 바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시기상조론’도 힘을 잃어갈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지 경기회복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인지 새해들면서 일부긴 하지만 경기회복에 대비한 기업체들의 발빠른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 조직을 정비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는가 하면 미국·중국 등 해외에 진출하거나 투자하려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제 기업체들은 얼마 가지 않아 군살빼기로 비어 버린 자리를 채우느라 분주해질 것이다. 심지어 호황을 앞두고 있다며 종전보다 더 많은 인력을 구하러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모습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 전자업계가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듯한 모습과는 판이하다. 이제 하강하던 경기가 변곡점에 도달하는가 싶으니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표변하는 듯하다.
기업이 경기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종종 문제가 된다.
부상하던 벤처기업이 신산업의 거품 붕괴로 인해 경영성과를 내지 못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경영자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그렇지만 연구개발과 같이 단기간의 성과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비워줘야 했던 자리가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해외투자만 해도 그렇다. 최근들어 중국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는 듯하니까 어찌하면 중국에 연줄을 대볼까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 IT산업과 신경제의 엔진인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경기가 침체됐다고 해서 철수한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또 해외에 사무실을 차리고 사람을 보낸다면 누가 기꺼운 마음으로 그곳에 가겠는가. 우리가 어차피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면 미국도 좋고 중국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년 후 경기가 다시 나빠질 때 또 철수할 작정이라면 이제 그러한 진출은 삼가하는 게 좋겠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기업과 훌륭한 경영자가 적지 않다. 새해부터 경기회복에 대비하려는 그들을 냄비근성에 젖어 있다고 탓하려는 게 아니다. 호황일 때 불황을 생각하고 불황일 때 호황이 멀지 않았음을 잊지 않는 여유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수십 년은 아니라도 10년 앞 정도는 내다보는 경영풍토가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해는 우리 기업이 새로운 미래상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그것을 세우고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실행프로그램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