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아르헨 경제난 스페인에 불똥

스페인 통신·전력업체들이 아르헨티나 경제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그간 미 달러화를 기준으로 책정하던 공공요금체계를 페소화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아르헨티나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이들 스페인 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90년대 초 통신·전력시장에 대한 해외투자촉진책의 일환으로 전화 및 전기요금을 미 달러화 기준으로 책정하도록 허가했으며, 이런 가격정책은 페소화의 일대일 달러연동제와 더불어 스페인 기업들의 대규모 아르헨티나 투자를 불러일으킨 원동력이 됐다. 현재 아르헨티나 최대의 전화회사는 스페인의 통신기업 텔레포니카(Telefonica)가 소유하고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력을 공급하는 기업 역시 스페인의 엔데사(Endesa)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들 스페인 업체의 아르헨티나 투자총액은 200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절정에 달하면서 지난 6일 아르헨티나 의회는 페소화의 30% 평가절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페소화 달러연동제 철폐법안을 의결했다. 더욱이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가 공공요금체계를 페소화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해외 업체들의 가격인상을 금지하는 특별조치를 취할 방침임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스페인 통신·전력업체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스페인 증권 분석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로 텔레포니카의 수익은 연간 5% 하락하고 엔데사의 수익 역시 연간 2%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원금의 회수가 상당기간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이유에서 스페인 업체들의 대응은 매우 강경하다. 텔레포니카를 위시한 스페인 통신·전력업체들은 이미 공동전선을 구축, 페소화 평가절하의 위법성 여부를 가리기 위한 법률자문에 들어갔다. 필요한 경우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특히 해외 업체의 가격인상을 금지하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의 시정을 위해 아르헨티나와 맺은 기존 통신·전력 공급계약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계획이다.

 이런 업체들의 입장은 아르헨티나에 파견된 스페인 정부대표단에 의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경제장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소요사태로까지 치닺고 있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스페인 업체들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만도 없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처지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미국 다음으로 많은 투자를 해온 나라기도 하다. 현 경제위기에 냉담한 미국과 IMF의 반응을 고려할 때 향후 아르헨티나의 경제 회복에 스페인의 역할이 그만큼 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스페인 통신·전력업체들과 아르헨티나 정부의 갈등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현 경제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