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today.com=본지특약】미래의 시계도 현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인간보다 더 오래 생존하도록 설계된 시계이든 오랜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개발중인 시계이든 시계는 지금 인간에게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베이지역(샌프란시스코만 주변 실리콘밸리)의 미래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앞으로 1만년 동안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경이로운 ‘밀레니엄 시계(Millennial Clock)’ 1차 시제품을 완성했다.
청동 부품들이 윙윙거리며 움직이는 이 시계 소리에는 정확한 계산과 무한한 미지가 융합돼 있다. 이 시계는 인간의 태만으로 잠시 멈춘다 해도 다시 째깍거리며 작동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가도록 설계됐다. 이 시계의 가장 짧은 측정 단위는 분이며 이 시계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침은 하루에 딱 한번 움직인다. 이 시계는 연단위로 똑딱거리며 천년마다 종을 친다.
샌프란시스코의 롱나우재단(longnow.org)이 추진하는 거대한 밀레니엄 시계 프로젝트는 인간이 현생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생각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 시계를 만든 사람들은 이 시계의 개념이 시간의 증분을 표시하는 것 그 이상이며 이 시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입장에서 시간과 존재 이유에 대한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밀레니엄 시계를 1만년 동안 작동시키는 데 한가지 인간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 시계는 수천년의 마손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 시계의 태엽을 감아야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태엽감기를 잊을 경우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롱나우재단의 알렉산더 로즈 밀레니엄 시계 설계팀장은 “문제는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지적했다.
이 시계는 런던과학박물관(sciencemuseum.org.uk)에 보관돼 있으나 이 박물관 직원들은 일에 쫓기다 보면 이 시계의 중단없는 작동을 위해 판에 박힌 듯 자전하는 타워 2개의 움직임을 지켜보지 못하고 간과할 수 있다.
로즈 설계팀장는 “문제는 이 시계의 태엽 감기를 잊는 것”이라며 “만약 태엽감기를 잊는 바람에 작동이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특별히 로즈 설계팀장만을 안타깝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박물관 직원들은 이 시계 프로젝트에 익숙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이 시계는 단지 원형일 뿐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시계 완성판은 시제품보다 작동이 훨씬 수월하도록 만들어질 전망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산라파엘에서 개발중인 최종판은 완성 후 네바다주 야산에 설치될 예정이다.
밀레니엄 시계를 만든 사람들이 전자동 시계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화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아니다. 롱나우재단은 이 시계는 인류 모두가 책임을 지고 있는 미래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수시로 사람의 손길이 닿도록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즈 설계팀은 이 시계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언젠가 한번은 누군가 이 시계의 태엽 감는 일을 잊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비관적으로 말하면 그 전에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로즈 설계팀장은 “만약 인류가 멸망한 후 인간이 아닌 누군가가 이 시계를 발견한다면 그 존재가 이 시계의 기계적 움직임을 살핀 뒤 분해, 재조립 과정을 거치면서 작동방식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인류 멸망이라는 시나리오는 이 시계가 처음 설계될 때부터 고려됐다. 밀레니엄 시계가 전자식 시계와 달리 처음보는 사람도 기능을 손쉽게 알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은 이 때문이다.
슈퍼컴퓨팅 분야의 개척자인 대니 힐리스가 고안한 이 시계는 달의 위치와 단계,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시간, 춘추분점, 하지와 동지, 현행 그레고리우스 태양력 등을 지금부터 최장 1만년간 추적하게 된다.
온도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니켈과 동을 합금한 물질로 구성된 이 시계는 아울러 청동기 시대 물건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밀레니엄 시계를 본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 1만년 후 이 시계가 발견된다 해도 특별히 주목을 끌 이유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힐리스는 이 시계는 미래의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답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관심을 단기적인 시각에서 장기적인 시각으로 돌리자는 데 뜻이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 시계가 실제로 1만년간 고장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는 지난 95년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1만년 동안 작동하는 기계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인류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만년을 목표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인류 문화가 지구를 지배하는 기간을 1만년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힐리스가 슈퍼컴퓨터를 창안하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느린 시계를 설계하기도 한 인물이라는 점과 1만년을 목표로 한 밀레니엄 시계 역시 슈퍼컴퓨터의 창안자인 당초 힐리스가 추구했던 컴퓨터 혁명과 배치된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