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업그레이드 코리아`

◆김형오 국회의원·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연초 언론들은 신년특집을 통해 ‘업그레이드 코리아’를 제창했다. 우리 경제에 최대 지뢰밭으로 정치권을 규정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대통령선거 등 양대선거가 있어 더욱 그렇다. 요즘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당 민주화 논의가 활발하고 대선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 만큼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비례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정치권은 정보사회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사회의 생존논리는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이다. 네트워크사회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살아야 하고 지원을 받는 만큼 내가 베풀어줄 때 그 네트워크는 작동된다. 산업사회에서는 ‘남보다 내가 먼저’라는 선착순과 경쟁의 논리가 통했다. 내가 가지면 너는 잃게 되는 제로섬게임인 것이다. 동일한 물량을 놓고 누가 많이 갖느냐로 승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정보사회는 ‘남과 함께’라는 상생의 원리가 통한다. 함께 교환하고 생산함으로써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사회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세계’다.

 정치는 이런 점을 바로 시스템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환기에 우리 정치는 무기력했고 무지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벤처를 예로 들어보자.

 벤처는 정보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기업형태다. 그동안 규모 중심의 기업구조에서 벗어나 기술과 아이디어로 회사를 운영하는 체제다. 여기는 기존의 학연·지연·혈연이 통하지 않는다. 부의 세습도 거부한다. 오직 실력과 창의력만이 벤처의 생존 에너지다. 실력있는 젊은이에겐 새로운 기회의 땅이고 도전의 무대였다. 두뇌들이 몰리고 대기업에서조차 벤처로의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특유의 역동적 에너지가 발휘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기존의 우리나라 경제적·사회적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신선한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무참했다. 벤처는 곧 머니게임으로 등식화되면서 70년대 부동산 투기나 80년대 주식 투기와 비슷한 궤적을 걸었다. 여기에 학연·지연이 등장하고 권력이 개입되는 등 모양만 벤처지 실질적으로는 산업시대의 구태를 되풀이했다. 정보사회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플랜이나 준비가 없었던 탓이다. 물론 정치권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의 역할은 적어도 그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과 잣대를 제시해주는 데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그동안 반목과 갈등, 억지와 비난으로 부정적인 측면만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정보사회의 핵심가치인 ‘나눔과 베품’이나 ‘조화와 상생’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여야 갈등이 증폭되자 집권측은 국민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자세로 정치적 기능을 왜곡시켰다. 소위 ‘포퓰리즘(민중추수주의)’을 도입, 중요한 정책을 정치화시켰다.

 곳곳에서 덜 익은 정책들이 인기를 좇았다. 정치권은 나라의 미래보다 잘못된 결과만을 놓고 근시안적인 시비만을 가렸다. 결국 엄청난 부채들이 양산됐다. 의약분업 및 건강보험의 통합문제, 공적자금 투입문제, 무리한 빅딜과 구조조정, 수능시험의 혼선과 교육이민의 급증, 도덕적 해이현상의 만연,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논의 등 일관성과 투명성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기업들은 안절부절했고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정책이 결딴나도 책임지는 각료나 정치인은 드물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보사회에 맞는 국가시스템을 다시 짜자. 정부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미래도 경쟁력도 없다. 기업가들도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 하고 노조도 바뀌어야 한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벤처들이 더욱 늘어나야 되고 그런 벤처들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 통하지 않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다.

 업그레이드 코리아는 낡은 생각의 틀을 깨는 데서 출발한다. 2002년, 새로운 출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