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유럽-유로시대 `新바람` vs `辛바람`

유로화의 전면적인 도입으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유럽 소비자들은 유로가 몰고 온 여러 변화를 피부로 실감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최근 이탈리아 내각에서 유로 현금 도입과 관련된 정치적 갈등이 불거져 나오는가 하면 영국 등 비유로권 국가에서는 또다시 유로 가입 논쟁이 불붙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유로의 모습에 각별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유럽 소비자들은 유로 사용으로 환전비용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을 반기고 있다. 과거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인이 차를 몰고 이탈리아로 여행하는 경우 경비의 20% 정도는 환전하는 데 들 것으로 계산했다고 말한다. 갈 때 마르크를 프랑·리라의 순으로 바꾸고, 올 때 그 역순으로 다시 환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유로 사용의 경제적 이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소비자들은 유로 사용으로 국가간 가격 차이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독일의 드레스드너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로권 국가의 가격 차이는 ‘유지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일례로 벡스라거 맥주 한 병을 파리에서 마시려면 1.62유로를 지불해야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 절반이면 충분하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유로가 이런 국가간 가격 차이를 좁혀 전반적인 물가하락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벤츠 등 일부 다국적기업은 벌써부터 유로권 단일가격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런 소비자들의 기대심리에 부응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소비자들이 유로에 만족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유로 현금 도입 과정에서 나타난 급작스런 생활물가 상승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한 가정주부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동네 상점에서 유로로 가격을 표시하면서 물건 값을 슬며시 올리는 바람에 계산에 밝지 못한 사람은 쇼핑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라고 털어놨다.

 이런 생활물가 상승은 독일·프랑스·스페인 등 유로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보고되는 현상이어서 유로 교환에 따른 불편함과 함께 소비자들의 불만요인이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또한 향후 가계부담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로 금리를 결정하는 유럽중앙은행이 유로 현금 도입 이후 금리를 인하하기보다는 인상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주장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 반대론자들은 유럽중앙은행이 경제성장과 인플레 억제에 대해 동시에 책임을 진 각국 개별 정부와는 달리 단지 인플레 억제만을 약속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향후 금리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로가 단순한 화폐통합 이상의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 많은 소비자가 우려하는 일이다. 실제로 유로 지지론자들은 이번 유로 현금 도입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가간 조세·예산·재정 등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경제정책을 유로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 서로 조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이런 변화에 대해 별다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며, 그에 따른 두려움 역시 상당한 편이다. 현재 유로 현금 도입으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지역간 경제격차가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며, 이로 인해 조세·재정 등 부의 재분배 정책을 둘러싼 갈등 역시 가장 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시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