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벤처캐피털 회사 사무실을 방문하는 창업 희망자들은 대부분 투자를 유치하는 데 실패, 실망감을 안고 문을 나선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창업을 결심한 사람들이 처음 맛보는 좌절이다.
지난 2000년 약 880억달러를 기록했던 미국의 벤처투자가 지난해 약 180억 달러까지 격감한 상황에서 벤처캐피털 회사를 설득해 투자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면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어떤 회사에 투자할까.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벤처캐피털 회사 찰스리버벤처스(http://www.crv.com)가 최근
스토리지 업체 이퀄로직(http://www.equallogic.com)에 450만달러(약 59억 원)를 투자한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7월에 설립된 무명 벤처기업인 이퀄로직에 투자를 결정한 사람은 부루스 삭스 파트너(이사·42). 그는 이퀄로직이 그가 투자할 때 지키는 3가지 원칙을 모두 충족시켰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삭스 파트너는 지난해 3월 덴버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스토리지 분야에서 창업을 구상하고 있던 이퀄로직 피터 헤이든 사장을 만나 불과 2시간 정도 토론하면서 헤이든 사장이 정보기술(IT) 개발과 마케팅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데 반했다. 가장 어려운 첫번째 관문을 무사하게 통과한 것이다.
그는 투자할 때 기술보다 창업자의 자질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자금, 사람을 갖춰야 하는 데 이중에 사람, 즉 경영자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T&T벨연구소에서 사설교환기 개발에도 참여했던 헤이든 사장은 그 후 약 10년 동안 중대형 컴퓨터 업체 DEC 및 어답텍에서 저장장치 사업부를 이끄는 마케팅 본부장을 담당하면서 창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헤이든 사장은 중소기업들이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 맞춰 컴퓨터 저장장치를 증설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저장장치를 맞춤 서비스 형태로 공급하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거의 매주 만나 사업계획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이 과정에서 시장의 규모와 상장(IPO) 가능성을 주로 검토한다. 삭스 파트너에게 투자를 받으려면 시장규모가 최소한 10억달러에 달하고 또 5년 안에 상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헤이든 사장은 이들 2개 관문도 무사하게 통과했다. 마지막 남는 것은 10여명의 찰스리버벤처스 파트너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말 열린 최종 투자회의. 10여명의 베테랑 파트너들이 송곳 같은 질문공세를 퍼부었지만 헤이든 사장은 각각 5분이 넘지않는 간단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약 10달 동안 공을 들인 투자유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술과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극심한 벤처 불황 속에서도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 있다.’
헤이든 사장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