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교각살우의 어리석음

 ◆이영남 여성벤처협회장

요즘 벤처 관련 각종 게이트를 보면서 벤처기업인의 한사람으로서 착잡하기만 하다. 한때는 21세기 한국을 이끌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기대와 찬사를 한몸에 받았지만, 지금은 온갖 비리와 부정의 온상으로, 과거 부동산 졸부와 같은 벤처 졸부로 치부되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하다.

 이런 때일수록 창업 초기에 고생하던 일이 생각난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첫 제품이 나왔을 때의 감동, 쉽지 않은 영업끝에 계약을 성사시키고 직원들과 나눴던 환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온 집안식구의 보증과 담보로 대출받았을 때의 착잡한 마음. 직원들과 함께 밤을 지새워 컨테이너에 제품을 선적하고 무사히 세계 각국에서 잘 팔려 주길 기도했던 당시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지금은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으로 인프라가 많이 좋아져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사업을 하지만, 그래도 사업하는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환경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벤처기업인에게 지금의 현실은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요즘 일부 대주주들이 코스닥 등록 지분을 모두 팔아 경영에 손을 떼는 것이 일확천금을 노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실에서 더이상 기업을 경영하기가 싫기 때문인 점도 있을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도 부족한 마당에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졸부로 매도당하고 멸시당하면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벤처기업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벤처의 대표주자들, 특히 닷컴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고 코스닥의 폭락으로 기업가치 하락 및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 또 세계경기의 동반침체로 전통산업에 비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벤처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거품 형성에 따른 시장 왜곡과 도덕성 훼손이다. 지난 99년과 2000년의 저금리기조, 부동산시장침체, 재벌정책으로 인한 대기업 투자 억제 등으로 유동자금이 벤처로 몰리고 미국 나스닥에 편승한 코스닥의 활황으로 벤처기업들의 가치에 거품이 생겼다. 이에 따라 사업성이나 기업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묻지마 투자’가 성행, 벤처를 사칭한 사기행각이 이어져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제 벤처기업은 더이상 우리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분명 벤처열풍은 결코 헛된 것이거나 실패작이 아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셋만 모이면 음식점이나 할까 하던 우리 사회가 이젠 사람 셋만 모이면 벤처 창업을 논할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다. 이는 분명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다.

 우수인재들이 판·검사, 교수, 의사 등 일부 전문분야에 편중됐던 과거와 달리 이젠 기업에 뛰어들고 새로운 기업을 차리려 하고 있다. 또 대학생들의 창업 붐은 어떠한가. 돈의 흐름도 과거 대기업에만 치중하던 것이 이젠 중소·벤처기업으로 물꼬를 트고 있다.

 벤처열풍은 벤처기업 몇개를 키우고 코스닥지수가 어느 정도냐로 평가받을 것이 아니다. 벤처정책은 분명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왜곡되고 있던 돈과 사람의 흐름을 시정했고 우리 사회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 넣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벤처기업인에겐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가꿔갈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한편, 부정과 비리를 자행하는 사기 벤처를 철저하게 솎아내야 할 것이다. 벤처인은 국내에서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스타로 부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눔의 문화를 통해 부의 사회 환원, 후배 양성 등에 힘써야 한다. 투자자는 옥석을 가리는 투자를 통해 진정한 벤처를 키우고 최선을 다한 실패에는 관대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소비자는 우수한 벤처기업의 제품에 애정과 관심을 보여 그들이 세계 일류기업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우수기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뤄내는 총체다. 이런 기업은 또 우리에게 부(富)와 일자리, 심지어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기업의 주주이자 감시자라는 심정으로 기업을 키워야 하고 그 기업은 나눔의 문화로 사회와 그 성과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각종 게이트에 따른 부정적 인식이 벤처기업 전체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