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today.com=본지특약] 칼리 피오리나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CEO)의 향후 행보가 세계 여성 CEO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
피오리나 CEO가 컴팩컴퓨터와의 합병을 성사시키느냐의 여부에 따라 세계 여성 경영인들을 보는 시각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못지 않게 실패하는 여성 기업가들도 많다는 점에서 그녀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는 이들 여성 기업가들에는 중차대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피오리나 CEO가 컴팩과의 합병문제를 둘러싸고 HP 일가와의 실력 대결에서 패할 경우 CEO직 사퇴는 불가피하다.
그녀가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두가지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피오리나 CEO는 회사 주가하락 여파로 주주들로부터 내쫓긴 또 다른 실패한 CEO로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여성들이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된다.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패트리샤 F 루소 신임 CEO까지 포함한 미국 1000대 기업 중 여성 CEO는 불과 9명이지만 피오리나 CEO가 축출될 경우 이는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여성 CEO들은 보통 취임과 동시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련의 검증절차를 밟게 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중에는 중도하차하는 여성 CEO들도 있다. 지난해 11월 와나코 그룹에서 물러난 린다 J 와치너 CEO, 지난해 가격담합 혐의로 물러난 다이애나 D 브룩스 소더비 CEO, 지난해 합병 무산과 실적 부진으로 물러난 질 E 바라드 마텔 CEO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악기제조사인 볼드윈피아노의 카렌 L 헨드릭스 CEO와 루슨트의 데보라 C 홉킨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도 마찬가지 신세다.
여성 CEO의 해고는 이들의 취임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곤 한다. 와치너 CEO가 해고 수당도 받지 못한 채 해고될 때 뉴욕타임스와 위민스웨어데일리는 이를 1면 기사로 다뤘다.
기업 이사회가 여성 CEO를 선출할 때 대외 인지도도 고려 사항에 들어간다.
여성 CEO가 적은 데에는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적임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다.
미 연방 판사의 20.6%가 여성이며 상원의원의 13%와 신경과 의사의 4.6%가 여성이지만 포천지 500대 기업 중 여성 CEO는 1.2%며 1000대 기업 중 여성 CEO는 1%가 채 안된다.
이처럼 여성 CEO가 적은 것은 ‘17세기에 여성 셰익스피어가 없는 이유’를 설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논리를 빌린다면 ‘남성 중심의 이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피오리나 CEO의 경우는 이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녀는 취임 당시 당당히 “‘유리 천장(고위직 여성 부재현상)’이란 여성차별주의는 기업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최근 ‘피오리나 CEO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커버 스토리에서 그녀에 대해 ‘결단력 있고 대담하며 과감성이 있다’고 표현하는 등 기존 남성 CEO에게 적용하던 표현을 썼다.
지금까지 여성 CEO가 남성 CEO보다 못하다는 연구 자료는 없다. 더구나 자크 나세르 CEO가 포드에서 쫓겨나는 등 남성 CEO들도 더 이상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 이사회는 여성 CEO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곤 한다. 경영자급 인력 소개업체인 하이드릭앤드스트러글스의 제라드 R 로체 회장은 “최근 한 회사 이사회에 여성 임원들을 소개하자 당장 피오리나 CEO 문제를 들고 나오며 우려감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홍보회사 니하우스라이언웡의 에드 니하우스 공동 창업자는 “언론은 CEO 깎아내리기를 좋아한다”며 “이런 점에서 여성 CEO 흠잡기는 단순히 성차별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여성 CEO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이같은 언론의 주목은 다른 한편으로 여성 CEO가 남성 중심의 이사회 멤버로 선출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급 인재 알선업체 러셀레이놀즈어소시에이츠의 안드리아 레드먼드 리쿠르터는 “여성 CEO가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며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남성 CEO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피오리나 CEO는 이같은 면을 최대한 활용한 경우다. 그녀는 취임 이후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을 자신과 회사 이미지 관리에 활용했다.
이런 피오리나 CEO가 축출된다면 그녀 역시 그저 쫓겨난 여성 CEO들 멤버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몇달 아니면 몇년간 CEO로 일하다 물러난 남성 CEO들 편에도 속할 수 있다.
CEO들의 교체 비율은 지난 90년대 절정에 달해 정치인들에게 이혼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것처럼 해고는 CEO에게 흔한 일이 됐다.
취업 알선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의 존 A 챌린저 CEO에 따르면 지난 99년 8월 이후 미국 기업의 CEO 교체건수는 2246건에 달했다. <제이슨임기자 jaso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