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윤리강령이 나올 모양이다.
지난 17일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김성현 한국IT벤처기업연합회장 등 7개 벤처기업 관련 단체장이 삼성동 무역센터에 모여 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각종 벤처 게이트에 대해 자신들의 소회를 밝히면서 이달 25일께 벤처기업 윤리강령을 제정해 선포하겠다고 선언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벤처기업까지 윤리강령을 만들겠다고 나서게 됐는지 전후 사정을 꼼꼼히 따져 보기 전에 마음 한켠이 휑하다. 그만큼 벤처기업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차가워지고 벤처기업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윤리강령으로 치면 이제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반열(?)에 오른 것 같다. 의사협회·변호사협회·기자협회·PD협회 등 한국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부터 간호사협회·사회복지사협회 등 봉사와 책임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단체에 이르기까지 웬만큼 틀을 갖춘 이익단체라면 모두 윤리강령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 물론 윤리강령의 제정과 이의 실천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난 1∼2년간 증권업협회·코스닥증권시장 등을 비롯해 투자신탁·증권사·은행권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윤리강령 제정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윤리강령에 징계권 조항을 둔 것이 주효했는지 아니면 금융감독기관의 엄정한 감독 기능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금융권 거래 관행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게 금융권 당사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대표적인 예로 상장 예정인 주식의 공모가 산정을 둘러싸고 증권사 법인영업담당자와 투자신탁회사의 펀드 매니저 사이에 공공연히 이뤄지던 접대문화나 업무 관행이 개선돼 이제는 많이 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징계 조항이 워낙 강화된 데다 금융감독기관이나 사정 당국이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 상황도 일조했다.
아무튼 이번에 벤처기업 관련 이익단체들이 제정하겠다는 윤리강령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규범적인 측면보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더 커 보인다. 벤처기업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부정적인 의식을 바꿔 놓고 한국 경제의 진정한 성장엔진으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사실 벤처기업들이 특별히 유난을 떨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부도덕한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지만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보다 충실하고 경영 투명도를 높이는 것 자체로 벤처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인 책무는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윤리강령을 제정해 선포하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사회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업회계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열린 기업문화의 실천을 통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현시점에서 벤처기업이 한국 기업계에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이 아닐까.
어려운 환경에서 분투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에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기대해본다. 지금 당신들 어깨에 진정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려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