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냄비근성과 `장님 문고리`

 ‘패스21’에 대한 추문사건이 한달째 지상을 장식하고 있지만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구린 냄새(?)’가 나면 엄벌에 처하겠다며 화살의 방향을 전체 벤처업계로 돌린 것이다. 벤처 기업인들도 윤리 강령을 제정하느니, 결의대회를 갖는니 혹시나 튈지 모르는 ‘불똥’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때 맞춰 여론 역시 벤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자. 사실 벤처기업 추문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누구나 기억할 만한 이른바 ‘×××게이트’가 수두룩했다. 그 때마다 정부는 잘못된 벤처 정책을 바로 잡겠다며 의지를 다졌고 여론은 벤처의 모럴해저드를 목 놓아 비판했다. 마치 목소리가 큰 쪽은 죄가 없는 것처럼. 이렇다 보니 그 때 뿐이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여론은 ‘냄비근성’의 다름 아니었고 정부 정책은 ‘장님 문고리 만지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사실 조용할 만하면 터지는 벤처 추문사건은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환경의 후진성을 알려주는 데 불과하다. 기업인이 손쉽게 유혹에 빠져들 정도의 정부와 기업간 유착, 불합리한 거래 방식, 학연·지연 등 얽히고 설킨 인맥 비즈니스 등 공공연히 알고 있지만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관행이 바로 그것이다. 관행은 좀 고차원적인 용어로 시스템이다. 원인은 바로 잘못된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원인을 안다면 해결책 역시 간단하다. 모럴해저드를 비난하기에 앞서 정부와 업계에 만연돼 있는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이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관련법을 고치고 몇몇 기업인을 여론의 도마에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벤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벤처다. 어제 일등공신이 오늘 역적으로 몰린다면 벤처 육성이 필요하다고 외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정부 정책과 여론에 쉽게 흔들리는 벤처의 모습이 바로 우리 기업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