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베이의 멕 휘트먼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사안의 전후와 경중을 잘 가늠하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은 그녀의 경영능력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
취임 1년 만인 99년 휘트먼은 악몽같은 사건을 경험했다. 스물 두시간 가량 거래가 중단되면서 수수료 손실액이 무려 400만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면서 50억달러 정도의 회사가치가 날라갔다. 회사의 상실된 신뢰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e베이 내에서는 ‘큰 일’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휘트먼의 단명이 점쳐졌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과 소비자들까지 나서 휘트먼의 퇴진을 요청했다. 그녀는 담담한 태도로 맞섰다. 스스로 기술적 이해도가 낮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고에 대한 원인분석에 나섰다. 내로라 하는 기술자들을 위기 관리자로 선임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미국 IT업체로는 가장 큰 대가를 치른 사고로 기억되는 이 사건은 결국 휘트먼의 대응능력을 실감케 하는 예화로 머물렀다.
2002년을 맞은 휘트먼은 할 일이 많다. 회사의 시스템을 완벽히 해야 하고 중단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95년 출범한 회사의 견고한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휘트먼은 e베이가 더 큰 장애물도 너끈히 극복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도록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지난 98년 e베이에 합류한 그녀는 당시 e베이를 책임지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른 인터넷 업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한다. 하스브로와 세계 최대의 화훼업체 FTD에서의 생각이 인터넷 업체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었다. e베이에 첫발을 내딛은 날 그녀는 매니지먼트 팀을 만들고 회계시스템을 바꿨다.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짰고 e메일 시스템을 구성했다. 또 98년 9월로 다가온 회사의 IPO에 대비했다.
가장 큰 숙제인 사이트 신뢰성 향상에도 주력했다. 시스템 구축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미팅을 갖고 개인적으로 선의 CEO 스콧 맥닐리에게 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 현재 e베이의 평균 다운타임은 한달에 4초에 불과하다. 사이트가 하루에 2억6000만 페이지뷰에 해당하는 점을 감안하면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 98년 당시에는 6500만 페이지뷰였다. 또 98년에 초당 180MB를 전송하던 데서 현재는 1.3Gb를 전송한다.
휘트먼은 여기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위해 차세대 쇼핑기술인 ‘V3’를 설치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e베이의 데이터 웨어하우스용 실시간 업데이트가 포함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상품 리스트는 매분마다 업데이트된다. 나아가 올 상반기동안 e베이는 새로운 서치기술을 선보이는 동시에 이 기술을 라이선싱할 예정이다.
하지만 e베이와 휘트먼에게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e베이와 휘트먼은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들로부터 거대 업체나 고급 소비자들만 위한다는 불평을 듣고 있다. 중소규모 업체 관계자들은 그녀가 거대기업 지향이라고 비난한다. 매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휘트먼이 작은 사업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성가신 문제는 그레이마켓의 존재다. 여기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들이 은밀한 거래를 수행한다. 살로먼스미스바니에 따르면 e베이는 전체 판매액의 10∼25%를 그레이마켓으로 인해 잃고 있다. e베이는 이 매출을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몇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e베이는 다른 인터넷 업체들을 놀라게 할만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순이익은 10억5000만달러로 예상된다. 총 판매매출은 130억달러. 이는 지난해 순이익 7억3000만달러 및 90억달러의 판매매출에 비해 크게 신장한 수치다.
이 회사는 또 하나의 성장 동인을 해외에 두고 있다. 3년 전 5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목표는 2005년까지 30개국으로 늘리는 것. 해외 지사는 지난해 1억1000만달러의 수익을 가져왔고 오는 2005년에는 8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휘트먼은 현재 e베이에서 행복하며 사임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e베이의 CEO를 마지막 직책”이라고 힘을 주어 말하는 휘트먼에게 인터넷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